[오늘과 내일/하태원]오바마-롬니, 朴-文-安의 조합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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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낙승이 예상됐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막판에 요동치고 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이달 초 1차 TV 토론을 계기로 상승세를 타더니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오바마를 앞서고 있다. 롬니 강세의 결정적 요인은 유권자의 75%를 차지하는 백인 표 결집이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는 백인표에서 8% 열세였지만 올해는 그 격차가 무려 21%나 된다. 4년 전 건국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을 뽑은 백인들은 인종문제 관련 ‘부채(負債)의식’을 떨쳐버린 듯하다.

올해 대선은 20년 만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린다. 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도 출렁일 수 있다. 미국 맨스필드재단 고든 플레이크 대표는 “한국 보수는 미국 보수에 비해 중도적이고, 미국 진보는 한국 진보보다 온건한(moderate) 편”이라며 “오바마-이명박(MB)의 밀월(蜜月)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진보와 미국 보수 조합의 불협화음은 선례(先例)가 있다. 북한을 보는 눈이 다르면 폭발력은 더 커진다.

2002년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며 집권했던 노무현 정부가 2004년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기원한 것은 비밀도 아니다. 청와대 참모들과 주요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요 악의 축이라고 했던 부시와 네오콘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는 볼멘소리를 자주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담당 성 김 대사는 ‘동북아 균형자론’ ‘서해 북방한계선(NLL) 법적근거 미약’ ‘북한 핵 보유 타당성 두둔’ 발언을 하며 사실상 한미동맹 이탈에 나선 듯한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 파악에 진땀을 뺐다.

2000년 부시의 승리에 땅을 친 사람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었다. 앨 고어가 이겼다면 북한 조명록과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교차 방문 이후 미 대통령의 역사적 평양방문이 이뤄져 북-미관계 정상화가 성사됐을 것으로 믿었던 DJ였다.

MB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한 인사는 한미 원자력협상 타결 불발과 한미 정권 교체는 긴밀히 연결된 문제라고 설명했다. 미국 협상대표이자 철두철미 비확산론자인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군축·비확산담당 특보와 2010년부터 벌여온 협상의 최대 쟁점은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 허용 여부다. 미국은 MB 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완전한’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고 싶지만 차기 정부에 대한 확신 부족 탓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 안보상황 변화나 좌파정부 등장으로 핵주권론이 득세하면 한국이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004년 9월 불거진 ‘남핵(南核) 파동’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0년 일부 과학자가 핵물질 실험을 하고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태를 말한다. IAEA는 핵무기 개발과는 거리가 먼 극소량 실험이며 ‘과학적 호기심’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사건을 종결했지만 한국의 비핵화 진정성은 강한 의심을 받았다.

양국 대선 결과로 생길 수 있는 4개의 조합 중 어느 쪽이 최선일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대북(對北) 정책을 포함한 안보현안에 대해 원론적 입장만 밝힐 뿐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다. 외교안보정책은 표의 확장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선 담론이 ‘과거’에 갇혀 있고 야권은 온통 단일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황에서 후보자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내다보는 혜안을 증명해보라는 말이 잘 들릴지 모르겠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미국 대선#한국 대선#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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