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앞뒤 모르고 스웨덴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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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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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도 줄줄이 어긋나는 법이다. 지난해 무상 급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더니 이제는 무상 보육의 단추도 어긋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보육과 급식 정책은 아동수당 지급을 전제로 한다. 우리나라가 아동수당 같은 큰 틀을 정하지 않고 표심을 앞세워 임시변통적으로 정책을 수립하다 보니 그 모양이 자꾸 이상해지는 것이다.

서구에서 아동 수당은 출산 장려를 위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지급한다. 이 돈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는 학용품비나 급식비가 되는 셈이다. 서구 선진국에 대체로 학교 급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무상이 아닌 것은 아동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복지 원칙에 어긋난 양육보조금

스웨덴은 특별한 경우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호황기에 노동력 부족으로 여성을 대거 근로현장에 끌어들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나라는 힘든 일에는 외국 노동자를 썼다. 그러나 외국인에 배타적인 스웨덴은 자국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스웨덴의 여성 취업률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비해서도 훨씬 높은 이유다. 스웨덴에서는 일할 의지가 있는 여성은 거의 모두 일한다고 보면 된다. 이런 스웨덴이니까 무상 급식이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많은 주부들이 집에 있는데 무상 급식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다.

보육 서비스는 출산 장려가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 즉 맞벌이 여성 지원을 위한 제도다. 보육 서비스에 대해서는 모든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가진 여성이 우선권을 가진다. 문제는 전업 주부다. 이들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할 경우 대신 양육보조금을 지원해야 하는가. 원칙적으로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와 달리 직장 여성보다 전업 주부가 훨씬 많다. 전업 주부들이 직장 여성 우선의 서비스에 반발하자 정부가 굴복해 양육보조금을 만들었다.

서구에서 보육은 0∼2세와 2세 이후가 큰 차이가 있다. 0∼2세는 집에서 키우는 것이 원칙이다. 2세까지는 엄마와 같이 있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 기간에도 국가는 아동수당 외의 지원은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려면 다니던 직장에서 휴가를 내야 하는데 줄어든 수입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스웨덴에서는 개인 절반, 기업 절반으로 미리 직장에서 기금을 적립했다가 월급의 80% 정도를 2년간 지급한다. 이런 방식도 대부분 여성이 직장에 다닐 때 가능하므로 우리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일자리 없는 아동복지는 낭비다

정부가 얼마 전 0∼5세 전면 무상 보육과 양육보조금 지급에서 0∼2세를 보류하자 정치권에서 일제히 반발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후보는 “0∼5세까지 보육시설 이용과 양육보조금 지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전 계층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약속”이라며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도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양육보조금은 경제활동을 장려하기는커녕 일하려는 여성도 주저앉히는 지원인 만큼 없애는 것이 옳다. 그 대신 서구처럼 아동수당을 주는 방향으로 가되 실정에 맞게 소득 상위층을 제외하는 것이 방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 복지가 일과 결합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스웨덴에서 무상 급식과 보육이 있고 나서 여성들이 취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취업을 하면서 이들이 시간 대신 세금을 내는 대가로 무상 급식과 보육이 확대됐다. 이 관계가 우리나라에서는 뒤집혔다. 우리나라는 자녀의 학원비라도 벌어볼까 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고사하고 남성 가장을 위한 일자리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대선후보들이 아동 복지를 늘려주고 싶으면 먼저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스웨덴#복지#무상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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