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조 노세라]돈으로 민주주의를 살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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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노세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조 노세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영화 ‘오스틴 파워’ 1편을 기억하는가. 닥터 이블이 30년 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나 핵탄두에 손을 올려놓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유엔 비밀벙커에 모인 세계 지도자에게 엄포를 놓는다.

“핵탄두를 돌려받고 싶다면 돈을 지불해야 할 거야.”

극적 효과를 위해 뜸을 들인 닥터 이블은 이렇게 소리친다.

“100만 달러!”

일동 웃음. 지도자들은 너무나 소박한 액수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요즘 미국 대선 캠페인을 보면 이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진 뒤 미 의회는 선거자금법 개정에 착수했다. 의원들은 개인기부금을 1000달러 이하로 제한하고 국가재정으로 지원하는 비용의 상한을 두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덕분에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가 맞붙은 1976년 대선에서 두 후보가 쓴 돈은 각각 3500만 달러 정도였다.

36년이 지난 올해 대선을 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진영은 9월 한 달 동안 1억810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국가재정에서 선거비용을 지원받는 것은 주요 후보가 됐다는 상징이었다. 오늘날 후보들은 어떤 제한에도 얽매이길 결코 원하지 않는다.

4년 전 법이 개정되면서 오바마는 더이상 국가재정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누렸다. 당시 그는 7억5000만 달러를 모았다. 반면 존 매케인은 국가재정 지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법에 따라 8400만 달러로 선거를 치러야 했다. 이번 대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와 오바마는 각자 최소 10억 달러 이상 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국민을 만나는 것보다 돈을 모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미 해군 아카데미에 따르면 오바마는 하루에 모금행사를 여섯 번 개최한 적도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판은 완전히 뒤바뀌고 있다. 슈퍼정치행동위원회(슈퍼팩)와 로비단체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법 개정으로 부유층은 슈퍼팩을 통해 “대가 없이(정말 그럴까?)” 수백만 달러를 후원한다. 친(親)이스라엘 성향을 지닌 카지노 제왕 셸던 애덜슨은 ‘미래를 복구하라’라는 공화당 슈퍼팩에 1000만 달러를 내놓았다. 여전히 선거법은 개인기부를 5000달러 이하로 제한하지만 슈퍼팩에 내는 돈은 제한하지 않는다. 국가가 선거자금을 조율할 수단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짐 밥 주니어라는 변호사를 아는가. 그는 선거자금 제한을 없애려고 줄곧 노력해온 인물이다. 밥 변호사는 제한 철폐야말로 수정헌법 제1조에 부합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미국 시민은 자기 선거구 의원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산다. 캠페인 비용을 늘리면 국민이 정치와 선거에 접근할 기회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제한 없이 돈을 쓴다고 해서 시민들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하진 않는다. 쉴 새 없이 TV 선거광고를 쏟아 부어봤자 식상한 시민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꺼버릴 뿐이다.

선거자금 제한 철폐의 더 큰 위험은 이렇게 정치로 흘러들어간 돈이 언제든 부정부패와 연결될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의회를 보라. 어떤 위원회에 소속된 한 의원이 그들이 다루는 해당 사안과 관련된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대선에 들어가는 자금은 의원 후원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큰 목돈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무시할 수 있는 액수가 결코 아니다. 만약 롬니가 당선된다면, 과연 그가 애덜슨의 의견과 다른 이스라엘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확신하기 어렵다. 금권선거는 민주주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 노세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사외(社外)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선거자금법#미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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