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세력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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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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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국제정치학자들에게 작금의 세계정치는 거대한 실험실과 같다. 몇 세기에 한 번 일어날 법한 변화들이 단기간에, 그것도 중복적으로 일어나 국제정치학의 여러 이론을 검증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변화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오늘날의 국제정치학을 지배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소련의 붕괴로 홀로 남은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가 얼마나 오래 갈지를 둘러싼 것이었다. 주류 국제정치학자들은 세력균형의 법칙에 따라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세계정부가 없는 국제정치에서 한 나라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면 다른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여 어떻게든 중화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친소(親疎)가 통하지 않는다. 선의란 어느 한순간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힘이 있으면 생각과 행동도 바뀌기 마련이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썩는 것이 권력의 법칙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국의 군비를 증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국과 동맹으로 뭉쳐 그 힘을 견제하려고 한다. 그 결과 세계적인 제국은 지금껏 없었다는 것이 세력균형이론의 요체다.

中의 ‘완력외교’에 주변국들 긴장

과연 미국의 힘에 대한 균형이 이루어졌는지에 아직도 정설은 없다. 다만 냉전종식 이후 미국이 군사력 위주의 일방주의 외교의 경향을 보이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던 것, 유럽이 유럽연합으로 공동의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미국의 외교에 여러 차례 제동을 건 것, 중국과 러시아가 공조된 외교를 추구하는 것 등이 이론에 부합하는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이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일본을 추월한 급속한 경제성장,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 주요 2개국(G2)의 하나로 부상한 중국이 과연 어떠한 외교 행태를 보이고 그것이 지역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어떠한 파장을 미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시 권력의 법칙과 세력균형이론이 출발점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성장과 외교적 부상으로 중국의 대외정책은 더욱 고압적으로 바뀌게 된다. 최근 중국은 공자학원의 설립이나 개발원조 등 소프트파워를 위주로 하던 매력외교에서 실력행사를 앞세우는 완력외교로 돌아서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다. 항공모함을 진수하는 등 군사력을 늘리고 그것을 과시한다. 희토류 금수와 같이 경제력을 휘두른다.

왜 그러는가.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경제성장으로 지키고 추구해야 할 국제적 이익이 많아지고 커졌다. 둘째, 그 이익을 위해 동원할 자원이 많아졌다. 셋째, 모순적이지만 중국의 외교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로 통할 만한 외교력이 있다면 보기 싫게 완력을 휘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묘한 권력의 법칙과 심리가 있다. 첫째, 힘이 커지면 이익을 더 크게 정하기 마련이다.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던 것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타협을 하더라도 타협점을 전보다 높게 잡기 마련이다. 둘째, 가진 것이 많으면 두려움도 커진다. 주머니에 푼돈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거금을 넣어두면 모든 사람이 도둑처럼 보이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미국의 행동이 전에 없이 중국의 성장을 시샘하여 해코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셋째, 인정에 대한 욕구다. 권력이란, 또 외교력이란 가진 자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남들의 인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인정을 받고자 힘을 휘두른다.

중국의 완력외교의 배후에는 이처럼 체계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중국에 인접하여 이익이 겹치는 부분이 많은 주변국들은 그 충격을 갈수록 크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중 한국이 가장 두드러진다.

주변국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히 그 힘을 중화하려고 한다. 안으로는 자국의 힘을 키우고 밖으로는 동맹국을 찾는다. 군비 증강이 가속화되고 미국에 기대는 나라가 늘어난다. 중국이 그것을 세력균형의 논리에 따른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고 보지 않고 미국의 (악의적) 견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가 발생한다.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는 갈등적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대선후보들 문제의 심각성 알아야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이 힘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두 개의 전쟁과 금융위기를 겪고서야 그 힘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처럼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둘째, 권력의 생리와 국제정치의 논리를 이해하고 소통을 통해 불필요한 불신과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면 고도의 전략적 식견과 외교적 능력이 요구된다. 온갖 장밋빛 공약으로 표심에 호소하는 대선후보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중국#동아시아#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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