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박근혜 위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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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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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며칠 전 우파 성향의 선거 전략가들을 만났다. 어느 캠프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확신했다. 새누리당이 연일 서로 삿대질을 하며 자멸하는데도 이들은 내기를 걸자고 했다.

근거가 흥미롭다. 야권엔 후보 단일화가 독이란다. 전략가들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공약 1호로 일자리 창출을 꺼낼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문 후보가 우파 이슈를 선점하면 박 후보가 필패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문 후보는 지금 중도로 나가기 힘든 상황이다. 당장 전통 지지층인 좌파와 호남에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면 대선후보조차 될 수 없기에.

단일화의 위력도 대단치 않게 봤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나설 것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단다. 결국 누가 단일 후보로 나서든 노 전 대통령이 얻은 1200만 표를 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박 후보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1150만 표에 이회창 후보 표(356만 표)를 일부 더하면 승리한다는 시나리오다.

그야말로 선거 공학적 분석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 후보가 이긴들 박 후보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우파가 똘똘 뭉친 결과다. 전략가들은 오히려 박 후보가 우파 결집에 마이너스 행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실책은 경제민주화란다. 박 후보에게 도통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박 후보의 삶의 궤적에서 경제민주화를 떠올릴 유권자가 얼마나 될까.

경제민주화나 복지로 중도를 잡겠다는 발상도 한가하단다. 중도의 특징은 위기감에 약하다는 점.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전쟁이나 평화냐’를 들이대자 야당을 찍은 이들이다. 4·11총선에선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를 백지화하겠다고 나서자 여당으로 돌아섰다. ‘누가 안정감을 주느냐’가 이들의 선택을 결정한다.

그런 중도가 박 후보에게 안정감을 느낄까. 우파에서조차 박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 박 후보는 통합을 말하지만 정작 당조차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토라진 건 이한구 원내대표 때문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사사건건 충돌했지만 박 후보는 “서로 다르지 않다”며 수수방관했다.

누구는 황우여, 누구는 이한구, 누구는 서병수가 문제라지만 실제 이들이 지목하고 싶은 이는 단 한 사람이다. 그분은 전쟁의 포화에서도 늘 의연하게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만 말한다. 장수들에게 무엇을 무기로, 어떤 전술로 싸워 달라는 구체적 당부도 없다. 소외된 장수들을 끌어내지도 못한다.

선거는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해 투표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게임이다. 한 전략가는 “박 후보가 호남에 손을 내민들 표가 얼마나 나오겠느냐. 오히려 지지층만 흔들린다. 국민대통합은 대통령이 된 뒤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나 통합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모두 절실하고 좋은 얘기다. 다만 박 후보는 성장과 번영, 여성 등 자신의 강점부터 살려야 했다. 당과 자신의 지지층에게 구체적 비전으로 신명을 불어넣어야 했다. 오죽하면 당직자들까지 “박 후보가 지난 5년간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박 후보에게 직언할 기회도, 용기도 없다.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 이게 박 후보 위기의 본질이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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