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정민]위기마다 등장하는 ‘종교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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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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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는 혼란 극복을 위해 인류가 종교적 가치를 자주 이용했다고 말했다.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정보통신이 발달한 21세기의 갈등에 종교적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아랍권에서 대규모 반미 및 반서방 시위를 불러온 영화 ‘무지한 무슬림’은 비코와 헌팅틴의 가설을 충족시키는 대표적 사례다.

아랍권 반미시위, 과격세력이 주도

역사적으로 서방과 이슬람권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서로 비방해 왔으며 폭력사태도 끊이지 않았다. 움마(이슬람 정치적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등장한 이슬람은 강력한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했다.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신념인 ‘라 일라하 일랄라(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실제로는 봉건영주 및 하급기사들의 새로운 영토에 대한 야망, 상인들의 경제적 이익 추구 때문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꾸란’으로 상징되는 이슬람 종교를 대상으로 삼았다. 200년에 걸친 전쟁의 ‘공식’ 목표는 이슬람의 통치하에 있던 기독교 성지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이슬람 과격주의가 정립된 것도 위기 때였다. 1258년 몽골의 침략으로 가장 융성했던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가 불에 타자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침략세력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19세기 서방과 이슬람권 간 갈등은 서방의 제국주의에 뿌리를 둔다. 이슬람권의 식민 통치를 원했던 서방은 이슬람 문명권을 어둠, 무지, 야만 등으로 묘사하며 도와주기 위해서는 점령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특히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들은 이슬람의 폭력성을 강조하며 유엔 안보리의 철수 결의에도 불구하고 요르단 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불법 점령하고 있다. 폭력적인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완충지대로서의 점령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여기에 냉전을 종식한 1990년대 초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서방의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이슬람이 대체의 적으로 부상했다. 이슬람권 내부에서도 장기독재, 부패, 경제발전의 실패 등으로 극단적 과격세력이 등장했다. 9·11테러를 촉발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고 알카에다의 본부조직이 사라지면서 소규모 자생단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해 테러를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리비아를 비롯한 이슬람권의 반미시위는 이런 역사적 갈등 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유대인들로부터 모금한 돈으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멍청이, 동성애자, 살인자, 소아성도착자 등으로 묘사한 영화가 제작된다. 아랍어판이 제작돼 유튜브에 오른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정권이 바뀐 국가들에서는 혼란을 틈탄 과격세력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시위를 주도하고 그 와중에 자신들의 정치적 존재를 알릴 공격을 감행한다.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나약한 대외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개발에 군사적 타격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다.

문화적 창작물을 시위도구로 악용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여론이 급속도로 움직이는 ‘고도로 연결된 세계’에서는 문화적 창작물도 ‘칼’과 같은 무기가 된다. 외교관을 살해하고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는 것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과격세력의 전형적인 홍보 수단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충돌을 주도하는 세력은 양측의 극소수 과격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소수가 세계 여론을 흔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막아야 한다. 21세기 우리는 다문화사회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종교 충돌#이슬람#반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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