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성욱]과학부를 신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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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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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과학과 기술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 것이 우리나라의 근대화 정책의 근간이었다면, 이 둘이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21세기 과학정책을 위한 토대가 된다.

과학과 기술은 원래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가 근대에 이르러서 접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근대과학의 문을 연 과학자들은 자연과 인공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이 만든 기계가 자연이라면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공물이며, 이 둘이 같은 합리적 방법을 사용해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기에 망원경, 현미경, 프리즘, 진공펌프 등의 기구들이 과학 실험실에서 사용되면서 자연을 조절하며 통제하는 새로운 실험의 방법을 낳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19세기 화학 산업은 화학의 지식이 직접 응용된 사례이며, 전기공학과 전기산업도 과학에 크게 빚졌다. 반대로 기술이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경우도 많아졌다. 음극관을 이용한 전자의 발견은 고진공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발견이었다. 최근의 과학사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발전에 그가 특허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다루었던 시계의 동기화 기술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과학과 기술의 구별 무의미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과학적 원리가 기술로 이어지고, 이런 기술이 다시 새로운 과학 연구 영역을 창출하는 것 같은 나선형의 발전이 훨씬 더 잦아졌다. 그 결과 나노과학이나 나노기술의 경우에는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부터가 기술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과학자 중에도 벤처 기업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엔지니어 중에도 순수과학과 비슷한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는 과학과 기술의 구별이 이제는 무의미하다면서, 아예 ‘기술과학’(technoscienc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렇지만 과학과 기술을 구별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둘은 동기와 목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설명이 안 되는 자연현상의 과학적 규명을 목적으로 한다. 이 점에서 과학은 철학, 예술, 역사학과 비슷하다. 자연에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 많이 있고 그 이유가 궁금하니까 과학 연구를 하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는 기술적 응용이나 산업 발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기술과 산업에 응용되는 과학은 많지 않다.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과학 연구는 그 응용 가능성이 매우 낮고, 따라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같은 조직은 이에 별반 관심이 없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국가가 국민의 동의를 얻어 세금으로 이런 연구를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1960∼1970년대 산업발전을 꾀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을 합쳐버렸다. 산업이 우선이고, 이를 위해 첨단기술과 이를 담당할 인력이 필요하며, 기술 인력을 교육할 정도의 과학적 토대가 있으면 된다는 것이 당시 논리였다.

과학기술, 과학기술자라는 단어도 이 시기부터 일상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고, 과학정책은 기술정책에 따라 붙는 부록 비슷한 것이 되었다. 그 결과 심지어 과학자가 연구비를 신청할 때, 자신의 연구가 국가경쟁력 고양 효과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예측해서 적어 내야 했다. 과학연구의 결과로 일자리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과학연구는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에 기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과학자들은 이 점을 강조하는 대신에, 과학이 기술과 산업을 낳는다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연구비를 받곤 했던 것이 슬픈 현실이다.

산업정책처럼 기술정책은 정부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주고 이것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정도로 유지하면 된다.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을 하지 않아도 돈이 되는 기술에는 기업이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과학에는 정부의 정책과 시민사회의 애정이 필요하다. 세금으로 조성된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연구에 배분하는가를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하며, 여기에는 연구 분야와 규모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조금 더 장기적이고 느긋한 태도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과학에 애정을 가지고 연구가 열어주는 새로운 지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 지원을

최근 각 대선주자의 캠프에서는 차기 과학기술정책의 청사진에 대한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통합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다시 분리해서 과학기술부를 부활한다는 논의가 거의 모든 캠프에서 나오는데, 과학기술부 대신에 미래기술부라는 낯선 이름도 등장한다. 진정으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술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에서 과학을 좀 자유롭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도 기술과 산업의 필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지원하는 ‘과학부’를 생각해 볼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홍성욱#과학기술#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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