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2>광화문에서 보는 생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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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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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내가 언론사에 몸담아 일했던 36년 가운데 28년간은 청와대 뒤편에 있는 서울 종로구 세검정을 중심으로 살았다.

1960년대 중반 봄철 한때에는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었고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는 이곳에서 데이트도 즐겼다. 참으로 오랜 세월 아침저녁으로 자하문 고개를 거쳐 청와대 옆 도로를 지나고 광화문과 세종로 사거리, 시청을 눈여겨보고 다녔으니 내 기억에 쌓여 있는 광화문의 역사는 길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효자동 근처에 살면서 우리나라 권력의 심장부를 둘러싸고 있는 주요 골목골목을 이따금 산책한다.

몇 년 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괴담이 퍼지면서 촛불 시위대가 광화문 주변 도로를 점령해 10·26사태 이후 가장 험악한 분위기가 빚어졌다.

요즘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청와대 주변에는 1인 시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판사, 검사, 경찰의 비리를 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혜 판결을 바로잡아 줄 것을 촉구하는 종이판을 목에 걸고 땡볕에 서 있는 사람도 목격된다.

그뿐 아니다. 광화문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4대국 대사관 외교관들의 나들이를 매일 목격하며 그들의 힘의 대결을 상상하기도 하고 청와대와 경복궁을 둘러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나라 관광객들 사이에서 세계의 숨결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기자 근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나름대로 사물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헛것이었다. 나는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봐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광화문도 죽음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오직 권력과 돈과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있다고 여겼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광화문의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응급 앰뷸런스가 앵앵거리고 장의차도 수십 대가 경복궁 앞을 오간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응급실과 영안실에서 나오는 차들이다. 전국에 수많은 환자들이 이들 병원에 몰려들고 있다는 것은 소문난 일이다.

나도 환자를 태우고 응급실에 달려가기를 수십 차례, 마침내는 세상을 하직하여 영혼으로 간직하게 된 가족을 장의차에 태우고 역사와 권력의 심장부 광화문을 지나갔다. 그때 뒤숭숭한 내 머리를 스쳐 간 것은 모든 사람이 죽음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광화문도 경복궁도.

그 오랜 세월 자하문 고개를 지나다니면서 청와대 서쪽 담장 옆 불과 10m 거리에 요양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후 일이었다. 호스피스 강의를 시작하면서 내 눈이 열리고 귀도 뜨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이 청와대 울타리 옆에서 보호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네 삶의 흐름을 상징하고 있었다. 세상의 권력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요양소 근처를 서성거리게 될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100m 떨어진 효자동 사거리에 장애인을 위한 푸르메센터,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국립맹학교와 농학교, 다시 이곳에서 400m 거리에 청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예쁜 찻집이 있다. 사직로를 건너면 경희궁 옆에 죽음교육센터 또는 호스피스교육센터로 불리는 각당복지재단이 있다.

이렇게 하나 둘 짚어 보면 병들고 몸이 불편한 우리의 이웃,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군상,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 길을 찾아나서는 청춘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이 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 및 각부 장관의 집무실 부근인 광화문과 경복궁 근처에서 살고 있다. 조선왕조시대에도 왕궁 근처에는 서민 구휼기관이 몰려 있었다. 육조거리는 생과 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의 모습을 쳐다볼 수 있도록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지금의 삶은 반쪽짜리다. 삶을 비춰 줄 거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도자들은 많은데 죽음의 표지석이 별로 없다.

1970년대 이후 이곳에서 박정희, 윤보선,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등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저격당하고 투신자살하고 오랜 병고 등으로 고생하다 떠난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청와대 옆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장소에조차 표지석이 없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죽음은 아픔이다. 아픔이 없는 죽음이 어디 있는가.

수많은 관광객은 그가 저격당한 청와대 앞 무궁화동산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나는 국내외 관광단 사이에 끼여서 가이드의 설명에 몇 차례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안내 깃발이 청와대 정문과 영빈관을 반 바퀴 돌면서 드디어 무궁화동산을 가리켰을 때 나는 역사적 중대 사건에 관한 설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며 까치발로 가이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최철주 칼럼니스트
그가 입을 열었다. “저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습니다. 이용하실 분은 지금 다녀오세요.” 나는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별난 경험이었다.

경복궁 북쪽의 건청궁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있다. 경희궁 옆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암살된 사회혼란상을, 청와대 서쪽 담장 옆 최규식 경무관 순직 안내문은 북한의 호전성을 폭로하고 있다. 그런 죽음이 우리 옆에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어디 광화문만 그렇겠는가. 깨치지 않으면 죽음도 한낱 (공중)화장실이 되고 말 것이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죽음교육#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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