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진땀 나는 공무원

  • Array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지하 6층, 지상 18층, 옥탑 2층의 멋들어진 유리 건물. 냉방을 제대로 하면 쾌적하기 그지없는 인텔리전트 빌딩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여름엔 찜질방이나 다름없다. 유리의 온실 효과 때문이다. 정부중앙청사 별관인 외교통상부 청사 얘기다.

뒤늦은 폭우로 한풀 꺾였지만 올여름 더위는 대단했다. ‘폭염’ ‘사상 최고’ 등의 날씨 관련 제목이 신문지상을 장식할 때마다 2008년 외교부를 출입할 때 무더위로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옛 생각에 30대 외교관 A 씨에게 연락을 해 봤다.

낮 최고기온이 35.3도였던 이달 6일 폭염경보가 발령된 외교부 청사는 하루 종일 냉방이 중단됐다.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에너지 집중 절감의 날’이었기 때문. A 씨는 “머리가 어지러워 사무실 온도를 살펴보니 36도였다. 책상마다 놓인 선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더운 바람만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직원들이 보기 딱했는지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오후 6시 정각 모두 퇴청하라”는 이색 지시를 내렸단다.

올여름 정부가 정한 관공서의 냉방 온도는 28도. 민간 부문보다 2도 높다. 전력소비 피크 시간대인 오후 2∼5시엔 세 차례(오후 2시∼2시 45분, 3시∼3시 반, 4시∼4시 반) 냉방 공급을 중단한다. 냉방의 기준인 ‘28도’를 놓고 심심찮게 공방도 벌어졌다고 한다. 1층이나 사무실 입구는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아 ‘냉방 불가’더라도 층수가 높거나, 근무자가 많은 사무실에선 30도를 넘기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로 지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나 경기 과천의 정부과천청사도 상황이 별반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정부중앙청사에 근무하는 30대 사무관은 “더위가 무서웠다. 1층 샤워실에서 잠깐씩 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야근자들은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더위와 싸웠다고 했다.

정부과천청사 5동에 입주한 법무부의 40대 검사 B 씨는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에어컨이 하루 종일 멈춰선 6일엔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 난생 처음 공무원이 된 걸 후회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정부과천청사 내에선 “정부의 ‘돈줄’을 쥔 지식경제부가 입주한 2청사 1동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온다더라”라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B 씨는 “너무 궁금해 지경부에 직접 가 봤다. 뜬소문이더라. 옛날 나라가 어지러울 때 떠돌던 참요(讖謠)도 아니고…”라며 혀를 찼다. 관공서로 분류되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국책연구소는 연구원들에게 부채를 나눠 줬다.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해 폭염이 최고조였던 이달 첫째 주 내내 냉방을 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땀을 줄줄 흘리며 부채질하면서 일하면 능률이 오를까. 전력 부족을 막기 위해 정부가 기껏 생각해 낸 게 ‘공무원 쥐어짜기 식 절전운동’이라면 민망하다. 사실 산업용 전기는 정부 청사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용에 비해 많이 싸고, 절전 기업엔 국민 주머니를 털어 보조금을 주고 있는 터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은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영세민과 홀몸 노인 등 ‘냉방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지원책, 장기적인 에너지 수급 대책을 강구하되 이젠 공무원이라는 죄로 진땀 흘리며 여름을 나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뉴스룸#조수진#관공서 절전#절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