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영호]대선자금 수사 섣불리 나설 일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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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폭염이 길었던 여름이다. 우리 선수들의 올림픽 승전 낭보가 없었다면 그 열기를 어떻게 이겨 냈을까. 하지만 여름 내내 불쾌지수를 높이는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창 불붙은 대선자금 수사 시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공천헌금 의혹이 새로운 이슈로 불거졌다. 5년 전 대선자금 문제도 그렇지만, 공천헌금 의혹은 다가올 대선 판세에 결정타가 될 수도 있는 문제라 다루기가 여간 예민하지 않을 것이다.

鷄肋 같은 대선자금 수사


대선자금 수사를 촉구하는 언론이나 야권의 논리는 단순하다. 대통령 친형이 저축은행 사주로부터 받은 돈은 물론이고 다른 여권 실세가 인허가 청탁 대가로 받은 돈 역시 대선자금일지 모르니 즉각 수사에 나서라는 것이다. 돈 받은 인사들이 당시 선거캠프를 이끌었고 건네진 시점이 대선 직전이니 볼 것도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증거와 단서가 있다면 덮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버티고 있다.

돌이켜 보면 대선자금 문제는 수사 대상으로 치자면 계륵(鷄肋) 같은 것이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덥석 달려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회피할 수도 없었다. 이래도 낭패를 보고 저래도 욕을 먹게 된다는 뜻이다. 줄곧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검찰이 참여정부 초기에 정면승부에 나선 적이 있었다. 형평성 문제를 비롯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을 졸이고 진행을 지켜봤다. 어느 기업의 분식회계 사건 수사 중에 포착된 큰 뭉치의 비자금이 야당으로 들어간 사실을 단초로 몇몇 대기업의 자금 제공 징후까지 포착해 수사를 확대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수사 경위다. 그동안 대선 때마다 여야 모두 거액의 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전모를 파헤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대선자금 수사는 벌여 놓고 보니 과연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국민의 성원 속에 비교적 엄정한 수사를 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두고 이런저런 비판이 제기됐다. 소위 ‘살아 있는 권력’인 현직 대통령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해 산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형평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기업인의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야당에 비해 여당의 불법자금을 제대로 못 밝혔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소추 불가를 이유로 야당 후보까지 입건하지 않은 것은 꿰맞추기라는 지적도 받았다. 형평성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검찰의 칼춤’은 대선 주요 변수


이전에도 대선자금 문제는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검찰을 야당이나 언론이 그냥 뒀을 리 없다. 대대적인 수사 촉구가 있었던 것은 문민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의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서였다. 당시 언론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뇌물만 수사할 것이 아니라, 비자금 중 일부가 현직 대통령의 후보 시절 선거자금으로 건네진 의혹까지 밝히라고 집요하게 압박했다. 게다가 비자금의 일부가 야당 총재에게 건네진 소위 ‘20억+α’ 의혹까지 뒤엉키게 되자, 초기의 수사 촉구는 점차 정치 공세의 성격으로 변질됐다. 하지만 죄질이 더 나쁜 뇌물혐의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고 대선자금 문제로 전선을 확대해 수사의 초점이 흐려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검찰의 논리가 먹혀들어, 대선자금 수사 촉구 공세는 수그러들었다.

당시의 수사 촉구 공세에 검찰이 중심을 잡지 못했다면 역사의 흐름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선자금 수사에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없었다면 그렇게 고비를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대선자금이 가지는 정치적 폭발력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국민들도 꿰뚫어 본 것이다. 물론 대선 총선 등 거의 모든 선거에서 불법모금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현실적인 면도 고려했을 것이다.

형평성은 법집행의 생명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각 후보 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선거에서 시비를 가리자면 형평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선거자금 수사는 국민의 신성한 투표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형평성에 대한 담보 없이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된다. 겉으로는 엄정한 법집행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당리당략을 꾀하는 무책임한 정치 공세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우리 대선에서는 당선자를 미리 알아맞히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 요인으로 북한 변수, 막판 후보자 간 연대 변수와 함께 ‘검찰의 칼춤’을 드는 사람도 있다. 대선후보 주변에 대한 수사 방향에 따라 표가 이리저리 쏠린다는 것이다. 씁쓸한 현상이다.

수사는 그 대상과 함께 시기도 매우 중요하다.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고 정치판의 이전투구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다. 민감한 시기에 칼춤을 춰 몸값을 올리고 위상을 과시하려 든다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검찰은 지난날의 교훈을 되새기며 대선자금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동아광장#문영호#대선자금 수사#ㄱ머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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