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박근혜와 엘리자베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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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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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국왕을 뽑는 설문조사에서 늘 1위에 오른다.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고를 채웠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했으며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는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의 성공적 치세는 밝고 활달한 천성과 뛰어난 두뇌에 힘입은 바 크다. 엘리자베스 1세는 숱한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를 비관한 적이 없었다. 역사와 철학에 통달했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 5개 외국어를 구사했다. 그는 수차례의 왕위 찬탈 음모를 이겨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가 자신의 역할 모델로 엘리자베스 1세를 꼽으면서 엘리자베스 1세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박 후보는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영국을 파산 직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으며 불행을 겪어 봤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늘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부모의 비극적 죽음을 겪었을 뿐 아니라 여성이고 독신인 정치지도자란 점에서 두 사람 간에는 공통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어머니 앤 불린이 간통과 반역죄로 처형돼 ‘공주’ 칭호도 없었다. 이복언니 메리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버지의 무관심이었다. 헨리 8세의 아들 집착은 유명하지만 딸에겐 무심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변변히 입을 옷조차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그는 무서운 절제력을 발휘해 목숨을 부지했고 군주로서 자질을 갖춰 나간다. 여왕이 된 뒤에도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왕은 만년에 “남이 쓴 왕관은 즐거워 보이지만 직접 써보면 그다지 즐겁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1세는 원칙을 중시했지만 원칙의 포로가 되지 않았다. 해적에게 제독 지위를 부여하는 사고의 유연함이 있었다. 다양한 상징 조작을 통해 신하와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아는 소통의 귀재였다. 그는 여성성을 통치에 활용할 줄도 알았다. 화려한 보석과 드레스로 치장했고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해 자신에게 성모 마리아 같은 권위를 부여했다. 가정사가 비슷하다거나 따라하기만으로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될 수 없다. 그의 자질과 풍모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롤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박근혜#엘리자베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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