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혜정]받을 수 없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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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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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장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장
좋은 일에 쓰라고 주는 거금을 앞에 두고도 “고맙지만 받을 수 없다”는 거절의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도 “당신이 번 돈이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때는 정말 난처하다.

조직 내에서도 기준을 완화해 융통성을 발휘하자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수단과 방법이야 어찌 됐든, 좋은 목적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굳이 어떻게 번 돈인가 묻지 말자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담장 너머 던져놓고 사라진 돈이 아닌 이상, 모든 후원금은 누가 어떻게 혹은 어떤 기업이 어떤 비즈니스 활동을 통해 형성한 돈인가를 반드시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이들을 돕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작은 돈에서 거액의 기부까지 많은 후원자와 후원사가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비정부기구(NGO)의 책임과 존재 이유 중 하나는 정부와 영리 기업들에 윤리적 잣대를 제시하며 사회의 한 축으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해당된다.

어느 해인가 3억 원을 후원하겠다며 한 기업 담당자가 연락을 해 왔다. 반가웠다. 그런데 얼마 후 우리 내부 방침상 그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결정을 듣게 됐다. 세이브더칠드런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왜 안 되지?’라며 꽤나 놀랐다. 모금을 담당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정작 놀란 건 그런 윤리적 규정이 그 기업에 왜 해당하는지 전혀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후원금을 거절해야할 때


그 기업은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하는,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그룹의 한 계열사였다. 하지만 무역거래 품목 가운데 무기가 들어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무기 거래로 인한 수익금은 후원금으로 받을 수 없다는 윤리규정을 두고 있다. 회사 담당 직원은 자신들의 회사가 기부를 하겠다는데도 거부당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아이가 있다고 말하면서 후원금을 받지 않는 것은 모순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내 한 자동차 기업의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어린이 관련 사업단체도 있다. 이유는 군대용 지프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 기업은 도로 위를 달리는 지프들에 군대용 도장만 한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국제 분류에서 군수물자와 방위사업군에 해당하는 기업군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있다.

담배나 도박과 관련된 사업처럼 아이들에게 해가 되는 사업군이 분명한 경우도 있지만 증권이나 과자, 보석제품에서도 받을 수 없는 기부금이 있다. 증권사의 경우 투자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게 되어 있는데 만약 윤리적인 투자상품군이 아닌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기업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일정 수익 이상이 그런 상품 투자에서 왔다면 그 증권사의 후원금 역시 받을 수 없다.

모든 국제 NGO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후원사에 대한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규정을 지키고 싶어도 기업에 내부 문건을 요구할 수 없거나 요구한다는 것만으로도 애초에 좋은 뜻을 가졌던 해당 기업은 기분 나빠 하며 다른 기관을 찾아갈 것이다. 만약 어떤 기업이 당당히 원산지에서의 공정무역거래 현황과 아동노동이 없다는 공증자료를 우리에게 제시할 때, 그 객관성을 검증하고 감사를 실행할 우리의 능력(?)이나 체계 역시 미흡하다.

세이브더칠드런 인터내셔널에서는 증권사의 후원금을 받을 때 증권사가 어떤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수익을 내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기를 권한다. 집속탄과 같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폭탄이나 무기 혹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비즈니스 분야에 투자해 전체 사업의 25%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면 그 증권사의 후원금은 받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논쟁과 논란이 있거나 아동노동, 인권침해적인 이슈가 있는 기업도 제외된다. 만약 제과업체가 초콜릿 과자의 수익금을 기부한다고 할 때 초콜릿의 원산지로부터 아동노동과 관련된 원자재가 수입된 거라면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굴지의 제과업체에서 원료의 수입처를 공증해서 내라고 하면 어떤 기업이 자료를 공개할 수 있을까? 그런 멋진 기업과 기업문화가 곧 나타나길 희망한다.

거금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


얼마 전에 한 사람이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다. 자신이 돈을 벌면 벌수록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비즈니스에 종사하는데 갈등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왜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라는 글을 남기고 떠난 사람처럼 그 사람도 곧 ‘내가 왜 그 업계를 떠나는가’라는 글을 남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직업에서의 윤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희망을 품는다. 단지 돈만이 아니라 직업의 가치와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고민하는 세대가 나타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 우리는 선한 길로 진보하고 있다고.

최혜정 세이브더칠드런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장
#동아광장#최헤정#기부#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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