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동영]모든 게 이명박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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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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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독도 세리머니 때문에 올림픽 동메달을 박탈당할 위기에 몰린 축구선수 박종우. 그리고 녹조. 이 둘의 공통점은 뭘까. 추가 힌트. 한국 산삼 채취량이 감소한 것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잦은 나들이. 그래도 정답 찾기가 쉽지 않다면 요즘 세태를 잘 모르시는 편이다. 정답은 ‘이명박 때문에 발생한 일’이란다.

이 대통령이 10일 독도를 방문하자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며 발끈했다. 마치 할리우드 액션을 연상시키는 반응으로 독도 문제가 국제정치 이슈로 커지자 이 대통령에겐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이 적지 않게 쏟아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인 박 선수의 행동을 ‘정치적 시위’로 보게 된 것도 이 대통령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녹조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으로 설치된 보 때문에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녹조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녹조 발생의 수많은 원인 중 일부에 해당할진 몰라도 남한강 강천보 상류 지역엔 녹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비가 내려 수량이 늘고 수온이 낮아지면 녹조는 수그러든다. 그런데도 녹조는 ‘이명박 때문’이라는 주장이 인터넷을 달군다.

일본이 독도를 강탈하려는 야욕만 없다면 대통령이 수십, 수백 번 독도를 찾아간들 논란이 될 리 없다. 축구선수 박종우가 ‘정치 시위’ 할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일본은 내버려 둔 채 이 대통령이 ‘현실 외교를 모르고 정치적 의도만 앞세웠다’고 탓한다.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에게 무한 책임을 묻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사안의 핵심과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점이 문제다. 녹조 문제를 ‘이명박 때문’이라고 정치 쟁점화하면 수량 부족이나 유기물질 유입,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문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사실 한국에선 모든 사안을 지도자 탓으로 돌리고 다른 원인엔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항목이 있다. 정치에서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문제를 노 대통령 탓으로 돌리던 세태를 잘 보여 준다.

옛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가 트로츠키는 노동자 계급을 선동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 끊임없이 적과 동지를 구분할 것을 주문하면서 법과 원칙은 중요하지 않으니 목적 달성을 위해 지배계층인 적을 공격하라고 외쳤다.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트로츠키의 이론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내편이 아닌 상대는 적인 양 무조건 공격한다. 특히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제1의 공격 목표로 삼는 건 일반화된 지 오래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이었다면 후임자가 들어선 뒤론 세상만사가 술술 풀렸어야 했다. 경제도 정치도 살아났어야 했다. 하나 그렇게 되질 않았다. 올해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해서 ‘이명박 때문’에 빚어졌다는 그 많은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모든 걸 대통령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원인을 찾는 게 합리적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계실 때 천주교계에서 펼쳤던 ‘내 탓이오’ 운동이 생각난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뉴스룸#이동영#이명박#이대통령 독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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