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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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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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최구식 전 의원을 사석에서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봄쯤이었다.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저녁식사를 할 때 옆방에 있던 그와 우연히 합석을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가 정치인의 덕목을 읊었다. 지혜와 용기가 가장 중요하단다. 올바른 길을 보는 것이 지혜라면, 아무리 위험하고 힘들어도 그 길을 가는 것이 용기라고 했다.

그해 12월 2일 두 사람을 한 기사 안에 담아야 했다. 정말 너무나 우연찮게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을 도울 목적으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했다.’

카메라 앞에 선 최 의원은 넋이 나간 듯 보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황당하다”고 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며칠 뒤 아내가 쓰러졌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원실의 인턴직원까지 샅샅이 뒤지고 감시받던 때였다. 그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자신을 알아볼까 봐 병원에 들어서기조차 두려웠다고 한다.

한 달 뒤인 올해 1월 떠밀리다시피 탈당계를 냈다. 탈당계를 쓰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단다. 4년 전이 떠올라서다. 그때도 총선을 앞두고 있었고 공천에서 탈락했다. 누구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탈당을 해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고교 3학년인 둘째 아들을 남겨두고 지역구인 경남 진주에서 선거운동을 해야 했던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민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당을 4년 만에 다시 떠나야 했다.

그 무렵, 민주통합당 정봉주 전 의원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법을 어겨 처벌받는 이는 영웅이 됐고, 부하직원을 잘못 쓴 이는 엄청난 음모의 배후세력으로 몰려 대역죄인(大逆罪人)이 됐다. 하지만 그런 억울한 감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검찰은 547개 계좌를 뒤졌다. 353대 전화의 통화 기록도 헤집었다. 44명을 62차례 불러 조사했다. 배후는 없었다. 다시 한 달 뒤인 2월, 이번에는 특검이 시작됐다. 수사에 동원된 인력만 100여 명에 달했다. 무소속으로 올해 4·11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지 닷새 뒤 특검팀은 그의 진주 집과 서울 전셋집에 들이닥쳤다. 아내는 힘없이 울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특검팀은 “디도스 공격의 윗선이나 배후는 없다”며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과 검찰, 특검팀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결과를 되풀이하기까지 203일이 걸렸다.

최 전 의원은 항변한다. “투표소를 못 찾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독재자라도 선거를 안 하면 안 했지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못 찾게 할 수 있습니까. 배후를 밝히지 못하는 게 아니라 밝힐 수 없는 겁니다. 애초 배후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죄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정쟁(政爭)의 제물로 삼은 것을 어떻게 보상하겠습니까.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곳에 세금을 허비한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대한민국 정치는 지혜도, 용기도 잃었다. 오히려 무지하고 비겁했다. 최 전 의원은 자신의 사건을 백서로 만들어 후세에 남기겠다고 했다.

이제 대선까지 여섯 달도 안 남았다. 각 정파는 죽기 살기로 서로를 물어뜯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최구식이 나올까. 대한민국 정쟁에는 이성이란 없기에….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최구식 의원#나경원 의원#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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