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재외공관 탈북자 대우 지침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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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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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중국을 거쳐 동남아 국가로 밀입국한 탈북자들은 이민국 구금시설에 잠정 억류돼 있다가 현지국과의 석방 교섭 끝에 한국에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사관이 현지 채용한 계약직 직원(행정원)들이 탈북자에게 폭언을 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관련 보도에 처음엔 ‘사실무근’ 내지 ‘과장·허위 진술’로 치부하던 외교통상부도 파문이 커지자 13일 태국 대사관에 관계부처 합동조사단을 급파했다. 차제에 정치권에서도 재외공관의 탈북자 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습 폭언 등 비인간적 대우 충격

신원조사와 한국어 통역 지원 등 탈북자 관리를 계약직 직원들에게 맡기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한두 명의 정무 담당 외교관이 본래의 고유 업무에 더해 이 업무까지 모두 처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약직 직원들의 자질과 복무 자세다. 또 대사관의 철저한 관리감독 여부다. 열악한 처우를 감안해 대사관이 해당 직원들의 복무자세 점검을 소홀히 했다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사건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고질적인 것인지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대사관 측이 지난해 북한 고위급 간부 출신 80대 탈북자가 보낸 탄원서를 받고도 별다른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 비슷한 경험을 한 탈북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문제가 규명되면 엄중 조치하라”고 지시한 것은 일단 적절했다.

2001년 중국 내 한국인 마약사범 사건과 2004년 이라크 교민(김선일) 피살사건을 교훈 삼아 정부가 재외공관의 자국민 보호 서비스를 이전보다 대폭 개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탈북자의 경우 인권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함이 드러났다. 또 일부 재외공관이 영사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기일전해 반복되는 재외공관의 직무 유기와 무능력 문제를 다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탈북자 담당 직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탈북자를 ‘쓰레기’ 정도로 취급해선 곤란하다. 이들은 생명을 무릅쓰고 사선(死線), 곧 수령독재를 피해 ‘자유대한’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이 같은 고귀한 ‘자유의 선택’을 대한민국은 존중하고 격려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현재 탈북자들은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넣는 전령사 역할을 하기도 하고, 통일 이전에 미리 남북 사회통합 실험을 해보는 모델 사례가 되기도 하며, 통일 후에는 남북 간 사회적 갈등의 완충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통일의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탈북자 대우에 관한 인권친화적 행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담당 직원 소양교육 강화해야

아울러 재외공관이 탈북자 관리 직원에 대해 소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감한 외교사안인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는 데 요구되는 전문지식과 자질을 습득하게 함으로써 보다 질 높은 외교 서비스를 탈북자들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엄중문책만으론 부족하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소원수리나 인센티브 제도 도입 등으로 직원들이 긴장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탈북자들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럼에도 일부 재외공관 직원은 이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한다고 한다. 북한과 중국에서 온갖 설움을 당한 탈북자들을 우리 재외공관마저 방기하고 무시한다면 헌법 제2조 제2항의 재외국민 보호 규정과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의 정신을 몰각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탈북자#대사관#재외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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