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홍섭]교사의 권위 땅에 떨어졌어도 교육자의 사명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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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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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섭 서울 일신여중 교장
전홍섭 서울 일신여중 교장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가까이에 ‘봉화산’이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평지에 돌출해 조망이 좋은 편이다. 산정에는 고구려 시대 보루(堡壘)의 흔적이 있고, 이름처럼 봉수대 지(趾)가 모형으로 복원돼 있다. 조선시대 함경도 변경의 전황을 철원과 포천의 봉수에서 받아 한양의 목멱산(남산)으로 전달하던 곳이다. 이 산은 인근 아파트나 주택가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마을에서 산책로처럼 드나들며 군데군데 쉼터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나도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시간이 되는 대로 봉화산을 찾는다.

정상 근처에는 정자가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다. 나는 둘레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서 이 앞을 지난다. 자연히 어르신들의 대화 내용이 들린다. 어느 때는 목청을 돋우면서 격론을 벌이신다. 토론의 주제도 다양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하고 세계적인 내용이다. 최근에는 ‘교육’에 관한 주제가 부쩍 많은 것 같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주장이 확고하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물론이고 학교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오간다. 때로는 글로 담을 수 없는 원색적인 얘기까지 거침없이 토로한다. 국민 모두가 교육전문가라더니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산을 오르면서 들었던 말씀만큼 얼굴을 붉히게 했던 경우는 없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맞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니 인성교육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담배를 피워도 못 본 척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내버려 두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 계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으며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정상을 돌아 산을 내려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분들은 내가 교장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따질 일도 아니다. 최근 우리 교육계가 국민의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사가 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교사들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전락해 학생을 지도할 의욕을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교육자로서의 사명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교단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교육자로서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다. 그간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충실한 인성교육을 했던가. 성적으로 학생을 대하고 상급학교 진학에만 급급해하지 않았던가. 새삼 참회가 가슴을 울린다. 이제 스스로 교육자로서 ‘나’를 객관화해 볼 시기가 된 것이다. 정말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인성교육이 왜 필요한가를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전홍섭 서울 일신여중 교장
#기고#전홍섭#교권 추락.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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