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오세정]젊은이들에게 실패를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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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한 동영상은 어느 농구선수가 화면에 나와 다음과 같이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나는 9000번 이상의 슛을 실패했다. 300번 가까운 경기에서 졌다. 게임을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슛의 기회가 26번이나 있었는데 성공시키지 못했다. 선수생활 동안 실패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형편없는 무명의 선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는 바로 역사상 최고의 농구선수라고 불리는 마이클 조던이다. 미국 농구리그에서 6번의 우승을 주도했고, MVP 상을 5번 받았으며 2009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최고의 선수다. 조던은 이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인류의 밤을 밝힌 백열전구에 적합한 필라멘트를 찾기 위해 1만 번 이상의 실험을 했다. 중간에 포기할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고 어느 기자가 묻자 “왜 포기를 하나요. 나는 이미 필라멘트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9000가지 이상 알고 있었는데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할 때는 타고난 천재라도 수없이 실패하게 마련이다. 정말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베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험난한 실패를 딛고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남이 안 한 모험적인 시도를 해야만 진정한 성공이 가능한 것이다.

험난한 좌절 딛고 도전해야 성공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이러한 도전과 모험의 정신이 사라져 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보다 안락한 의사나 변호사의 길을 선호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기보다 안정된 대기업 입사를 선택한다. 도전과 모험의 정신이 사라지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분위기가 정체돼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사회는 개인의 창의성이 유감없이 발현되는 창의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젊은이들은 찾기 힘들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범재(凡才)만 양산하고 있으니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요즘 젊은이들의 안이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과감한 도전과 모험, 특히 그에 따른 실패에 관용적이지 못한 것에 더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는 대학 입시에 한번 실패하면 만회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 그러니 너도나도 소위 일류 대학에 가려고 사교육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대학에서 전공도 한번 선택하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용기 있게 바꾸더라도 한국 학계의 고질적인 순혈(純血)주의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서는 ‘왕따’가 되기 쉽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도 별로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성공률이 매우 낮은 벤처를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새로운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살려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자로 낙인 찍어 초보자보다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패기 있게 창업에 나섰다가도 기회가 되면 그냥 안정된 대기업에 취직하여 안주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항상 새로운 발견과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과학기술 연구에서도 우리나라는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여 조그마한 성과를 얻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과감한 도전을 하다 실패했을 때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부 연구비를 사용했으면 그 연구비는 환수당하고 정부과제에 다시 참여할 기회마저 제한된다. 큰 과제에 오랜 기간 몰두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승진도 어려워진다. 사회 전체가 대담한 도전에 따른 실패나 남들이 가는 길에서의 일탈을 용인하지 않으니 패기 있는 젊은이도 감히 과감한 도전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시도하지 않은 것에 벌주라”

며칠 전 열린 ‘2012년 대한민국 학생창업 페스티벌’에서 세계 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설립자 지미 웨일스는 “나는 실패를 잘했다. 그리고 지금도 잘한다”며 “실패한 사람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이유는 실패한 기업들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다음과 같은 금언(金言)이 있다. ‘성공과 실패를 똑같이 보상하라. 단, 시도하지 않는 것에는 벌을 줘라.’ 우리 사회도 실패의 경험을 높이 평가해 줘야 젊은이들은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마음껏 시도할 것이고, 한국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창의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기초과학연구원장 sjoh@mulli.snu.ac.kr
#실패#성공#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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