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홍권희]중국에 한류正品 사라고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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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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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고다 미네오 전 한국닌텐도 사장이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막는 대책을 마련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우리는 왜 못 만드느냐”고 말한 직후였다. 당시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닌텐도의 게임기보다 게임 소프트웨어(SW)가 더 적게 팔렸다. 고객들이 값싼 불법복제 SW를 사서 쓴 때문이다.

“국내 음원 80%가 불법”


닌텐도는 지난해 게임산업 진출 3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내 휘청거리고 있다. 주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고객을 빼앗겼고 자체 혁신이 부족했던 탓이지만 오랫동안 불법복제에 시달려 힘이 빠진 이유도 있다. 거액을 투자해 만든 정품은 창고에 쌓여있고 길거리에서 복제품만 잘 팔린다면 누구라도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한글과컴퓨터 같은 국내 최고 수준의 SW기업도 불법복제 때문에 한때 매각 위기에 몰렸다.

한류가 유럽과 남미까지 번졌지만 한류 음원과 음반은 불법 다운로드와 복제본이 더 많았다. 세계 곳곳의 밀실에서 복제본을 만든 장사꾼들이 돈을 더 벌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해외에 “저 도둑들 잡아라”라고 큰소리치기도 쑥스럽다. 김경남 음원제작자협회 회장은 “국내 음원 가운데 불법이 80%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류가 뜨기 전에 국내에서 지적재산권 인식과 제도를 정착시키고 불법복제를 줄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문화서비스 시장이 커가는 중국에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마침 한중 통상장관들이 어제 베이징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의 견제를 받는 중국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때 우리가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1991년 저작권법을 시행했지만 기업들이 몇 년 전에야 특허에 눈을 떴을 정도로 지적재산권 인식이 약하다. 국내 온라인게임업체들이 진출했다가 불법 사설서버에 피해를 봤고 일부는 서비스를 포기했다. 지난달 말 게임업체 웹젠이 중국에서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C9’은 불법 사용자계정을 하루 3만 개씩 잡아낼 정도다.

김영삼 주중 한국대사관 상무관은 “중국에서는 국내기업이 제소를 해도 지적재산권 침해를 막거나 피해를 보상받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렇다고 피해를 방치했다가는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시장까지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적재산권 방어를 위한 비용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쓸 때는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외에서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으려면 남의 것도 지켜줘야 한다. 한미 FTA 제18장(지적재산권) 4조 9항은 ‘중앙 정부기관이 저작권 또는 저작인접권으로 보호되는 컴퓨터 SW 및 그 밖의 대상물을 침해하여 사용하지 아니하며…’라는 내용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불법복제 SW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다른 수출산업에 무역보복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

공공부문 복제SW 망신스럽다


불법복제 SW로 망신당할 가능성은 미국보다는 우리가 높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부문의 불법복제 SW 사용은 1% 미만”이라고 발표하자 업계에서는 “희한한 통계”라며 코웃음을 쳤다. SW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앙정부라서 봐주고 있어 아직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한 SW업체가 ‘몇몇 도와 시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한국저작권위원회는 기관별로 SW를 수백∼수천 개, 평균 3억 원어치 구입하도록 조정했다. 중앙부처도 컴퓨터 수와 구입한 SW 수를 비교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대기업 등 민간부문은 근래 크게 달라졌는데 정부가 불법복제 SW를 쓰다 걸리면 큰 창피다. 해외토픽에 나오기 전에 정품 SW 구입 예산을 배정해 사고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중국에도 요구할 수 있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경제 프리즘#홍권희#불법복제#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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