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춘걸]정유산업 과점이 고유가 문제의 진원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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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춘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문춘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석유제품 가격하향 안정화정책을 추구했다. 석유수입사 비축 의무 면제, 가격공개제도 실시, 알뜰주유소 확대,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개설 등을 추진했지만 가격 인하 효과는 미미했다. 최근 범부처가 공동으로 ‘석유제품시장 경쟁촉진 및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이라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효성은 불확실하고 여론도 냉랭하다.

정부는 정유산업의 과점 체제를 문제의 진원지로 보고 있지만, 이 때문에 가격하향 안정화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정유산업은 거대한 설비투자를 필요로 하는 생산기술적 특성 때문에 과점 구조를 이룰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석유제품 도소매시장의 과점 여부다. 정유산업이 과점산업이라는 것과 정유사가 유통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행사하느냐의 문제는 별개다.

석유 도매시장은 국내 정유사가 시장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매시장이 완전 자유화되어 있어 국내 정유사가 정상 이윤을 넘어서는 마진을 누릴 경우 해외의 대형 수입사 진입이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소수의 기업이 존재하긴 하지만, 잠재적 진입기업의 잠재 위협으로 인해 석유 도매시장은 국내 정유사가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경합시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시장개방화는 국내 정유사에 대해 역차별이라고 할 정도로 제도화돼 있긴 하지만, 해외에서 수입하는 물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런 현상을 ‘시장개방화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시장개방화가 되면 국내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국내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보유해 경쟁적 가격책정을 한다면 국내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대책 중 석유제품 혼합판매 활성화, 전자상거래용 수입물량에 대한 특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석유제품 혼합판매 확대를 위해 ‘섞인 기름’ 여부를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되도록 관계법령을 개정한다고 한다. 품질 문제나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무시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소비자가 정유사 제품인지 수입제품이 섞인 혼합제품인지를 모른 채 운에 맡기고 주유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주유소가 혼합판매로 인한 이익을 소비자와 나눌지 의문이다.

또한 전자상거래용 수입물량에 대해 0% 할당관세 적용, 수입부과금 환급, 바이오디젤 혼합 의무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석유제품의 품질규격이 우수하고 평균단가가 낮아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는 물량의 50%가 수출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자상거래용 수입물량에 대한 특혜는 우스꽝스럽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이 없는 외국 정유사를 지원하는 제도가 정당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에너지 재화의 기회비용을 반영한 시장가격에 따라 국민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고, 영세민과 에너지 소외계층의 직접 지원에 집중하는 것이 녹색성장과 동반성장을 함께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춘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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