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과정, 그 소중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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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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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한다(The Winner Takes It All). 스웨덴의 세계적인 록그룹 아바(ABBA)의 수많은 히트곡 중 하나다. 애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한 여인의 상심을 카드게임에 빗대 애절하게 표현했다.

“모든 카드를 내놓았고 더는 쓸 에이스 카드도 없어요. 승자가 모두 독차지하고 패자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주사위를 던지는 신의 마음은 얼음처럼 냉정합니다. 누군가는 쓰라린 패배를 맛보고 승자는 모든 걸 갖게 되죠.”

게임의 결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슬픈 노래다. 카드게임과 애인 쟁탈전뿐이랴. 세상사 대부분이 승자독식(勝者獨食)이다. 특히 스포츠 판은 그렇다. ‘아름다운 2위’ ‘잘 싸웠다’는 립 서비스일 뿐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챔피언의 몫이다. 직장생활에서도 ‘과정’은 참고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결과’만이 그 사람의 능력과 승진의 잣대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과정을 중시하는 스포츠가 딱 한 종목 있다. 바로 프로야구다.

3 대 2. 야구와 축구에서 종종 나오는 스코어다. 3점을 얻은 팀이 이긴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점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야구인과 축구인의 ‘철학’은 딴판이다. 연봉 조정 때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결승타와 결승골을 판별하는 기준이 다르다.

A팀과 B팀의 야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1회초 선취 1점을 뽑은 A팀은 3-0으로 앞선 9회말 수비에서 B팀에 2점을 내주는 바람에 1점 차 신승을 거뒀다. 이때 A팀의 결승타 주인공은 누구일까. 정답은 1회초에 선취 타점을 올린 선수다. 야구광이 아니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야구에선 동점을 허용하지 않았다면 리드를 잡은 타점을 기록한 선수가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다. 실제로 이대호(오릭스)는 19일 소프트뱅크와의 홈경기 2-2로 맞선 3회말 1사 1, 2루 찬스에서 2타점 2루타를 쳤고 이것이 결승타가 됐다. 이후 두 팀은 난타전을 벌여 각각 7점씩을 추가했건만 왜 이대호에게 ‘오늘의 선수 인터뷰’의 영광이 돌아갔을까. 오릭스가 11-9로 승리를 확정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동점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축구는 전반에 3-0으로 앞선 X팀이 후반에 Y팀에 두 골을 내줘 3-2로 이겼다면 X팀의 세 번째 골이 결승골이 된다. 추가골이 결승골로 둔갑하는 것이다.

이처럼 야구는 ‘과정의 스포츠’다. 팀 승리에 가장 먼저 힘을 실어준 점수를 높이 평가한다. 이는 승리투수 판별 때도 마찬가지다.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선발투수가 1-0으로 앞선 6회에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하고 강판했어도 구원투수가 무실점으로 그 이닝을 막고 계속 리드를 지켜 경기를 이겼다면 승리투수는 선발투수다. 게임의 절반 이상인 5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선발투수의 노고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홀드(자기 팀이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 다음 투수에게 리드 상황을 물려주고 강판하는 것)가 중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그동안 금메달리스트에 비해 홀대받았던 2, 3위 선수의 연금을 대폭 인상한 것은 환영할 만한 조치다. 세계 2, 3위는 대단한 성적이다. 이를 위해 피땀 흘린 그들의 ‘눈물겨운 과정’은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 2, 3위 시상대에 오른 태극전사들이여 활짝 웃자. 그대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승자#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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