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모창환]스웨덴처럼 보행권 존중하는 사회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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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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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보행 교통사고가 가장 심각한 곳은 우리나라다. 2010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5505명 가운데 2010명이 보행자였다. 특히 1063명은 횡단하던 도중 차에 치여 사망했다. 실제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의 보행권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도 신호를 무시하고 휙 지나가는 차량이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건장한 성인 남성인 필자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다. 하물며 어린이와 여성, 장애인, 임신부, 고령자 등 교통약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 심한 경우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 해도 정지선에 서는 차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차와 부딪히게 되면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보행자는 하는 수 없이 차량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가 오지 않을 때 급하게 건너야 한다. 매번 이렇게 길을 무단 횡단하듯 건너야 한다면 횡단보도의 존재 이유는 뭘까.

최근 스웨덴을 방문했다. 스웨덴의 횡단보도에서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됐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길을 건넌다. 차가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보행자의 표정에서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풍경이었다. 보행자가 모두 길을 건널 때까지 자동차가 정지선에 정차해서 보행권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이었다. 시내 중심이든 외곽이든 보행자를 위한 운전자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스웨덴 사람들은 보행자가 길을 안전하게 건너는 것을 확고한 법적 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스웨덴이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웨덴에서 보행권을 존중하는 운전자의 태도가 정착된 것은 정부의 규제와 끈기 있는 집행 덕분이라고 스웨덴 교통전문가는 말했다. 스웨덴 운전자들의 본성이 천사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정부의 중단 없는 노력으로 성숙되고 인간적인 교통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때’에만 차량이 정지선에 서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스웨덴의 교통법은 ‘횡단보도를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차량의 횡단보도 정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횡단보도에 선 보행자가 길을 건너지 않고 먼저 차량이 횡단보도를 지나가도록 기다릴 경우에도 차량은 보행자를 보고 정지선에 정확히 서게 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에는 횡단보도 안전을 위한 조항이 없고 보행권 관련 선언적 조항만 있다. 보행자의 교통사고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교통약자인 보행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펴지 못하는 낙후된 정치와 행정을 하는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안전하고 편리한 횡단보도 보행권을 보장하고 보행자 교통사고 1위의 국제적 불명예를 씻기 위한 내실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
#스웨덴#교통사고#횡단보도#보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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