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폼페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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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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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국제부 차장
김동원 국제부 차장
“돈이 없어 콜로세움(로마 원형경기장) 보수공사까지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탈리아 국민도 믿지 않을 겁니다.”

“그리스 이탈리아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면 우리도 숭례문 복원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얼마 전 고려대 정책대학원에서 국가부채를 주제로 열린 특강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었지만 콜로세움과 숭례문 복원공사가 대비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콜로세움은 로마를 찾는 여행객을 두 번 놀라게 만드는 유물이다.

4만5000석의 관람석이 갖는 웅장함은 물론이고 이를 2000년 전에 만들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4단으로 돼 있는 관람석을 지정된 입구를 통해 오르내리게 만든 설계도 압권이다. 이런 관람 방식은 현대화된 경기장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까지 들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수년 전 기자가 콜로세움을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은 현지인이 손을 휘저으며 ‘로마의 자존심(Pride)’을 여러 번 강조한 기억이 새롭다.

그런 콜로세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다. 2년 전부터 공해로 시커멓게 찌들고 있다. 곳곳에서 벽돌이 떨어지고 있다. 재정적자로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 정부는 보수공사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보수공사에 드는 2300만 유로(약 344억 원)에 이르는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 유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폭우로 무너진 ‘검투사의 집’을 비롯해 상당수 유적이 황폐해가고 있다는 외신이 최근 전해졌다. 서기 79년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파묻혀 사라졌던 폼페이 유적이 다시 눈물을 쏟는 듯하다.

콜로세움이 완공된 때와 폼페이 유적이 화산재와 함께 사라진 시점이 거의 같은 것도 흥미롭다.

돈 때문에 전쟁 수행이 힘들다는 또 다른 소식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얼마 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벌어졌던 포클랜드전쟁 30주년이 지났다. 이를 계기로 영국의 한 보고서는 제2의 포클랜드전쟁이 벌어져도 영국은 사실상 전쟁을 수행할 재원 마련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1부 리그의 군사강국이라면 영국은 현재 2부 리그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고(國庫)가 채워지지 않으면 10년 뒤엔 3부 리그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최근 사례는 바다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한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400조 원을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34.0%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428조 원으로 추산되는 한국 공기업의 빚을 포함하면 유럽 국가의 황폐함을 팔짱 낀 채 바라봐선 안 될 상황이다. 북한은 태양절(김일성 100회 생일)을 맞아 대형 미사일까지 공개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요즘이다.

더욱이 총선이 끝나고 집토끼(우호세력)와 산토끼를 확인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12월 대선고지를 정복하기 위해 대중영합의 선물보따리를 추가로 풀 가능성이 높다.

경제성장 없는 선심보따리는 결국 국가위기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진리 아닌가.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폼페이#이탈리아#영국#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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