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중국이라는 벽에 대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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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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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상황이 급박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2009, 2010년의 한반도 상황은 장거리 로켓 발사, 핵 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거치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최근 제프리 베이더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내놓은 책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격화하던 위기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미국 권력 심층부의 노력이 세세히 묘사됐다.

북한의 기습적인 170발 포사격으로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을 잃고 절치부심하던 우리 군은 북한의 보복위협에도 불구하고 2010년 12월 연평도 사격훈련 재개를 결심했다. 북한이 공격해 올 경우 수십 배로 되갚아 주고 원점을 타격해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읽은 미국은 확전 가능성을 걱정했다. 핵 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이 서해 군사훈련에 참가한 마당에 불필요한 충돌의 빌미가 될 사격훈련을 중단시키자는 쪽과, 상황 관리에 최선을 다하며 한국에 최대의 군사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고 오바마는 후자를 택했다.

사격훈련은 실제 상황이 됐고 백악관은 19일 밤 상황실에서 숨을 죽인 채 서해를 주시했다. 적어도 한 발 이상의 포탄이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에 떨어졌지만 북한군은 대응사격에 나서지 못했다. 상황이 관리된 것은 굳건한 안보의지와 한미동맹의 힘이겠지만 지난해 4월까지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총괄한 베이더는 중국 다루기에 주목했다.

오바마 외교안보팀은 중국 고위 당국자에게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이 실전배치로 이어진다면 미국과 한국, 일본 역시 상응하는 안보체제를 수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사일 방어체계 수립을 통한 중국 봉쇄의 가능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회고록 ‘결정의 순간’에도 대북 영향력 행사를 꺼리는 장쩌민 국가주석에게 “북핵 개발을 외교적으로 풀지 못하면 대북 군사공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하는 대목이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에 대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기 전에는 중국이 최대의 외교성과로 자부하는 6자회담에 복귀하기 않겠다는 한미 공동 전선도 형성됐다. 다급해진 중국은 평양과 서울을 부리나케 오갔고 워싱턴에 6자회담 재개를 ‘세일즈’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작년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선 중국이 공동성명에 집착한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오전 4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벌인 끝에 막판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담은 문안을 관철시켰다. 북한의 행동이 자국의 국가이익을 크게 손상할 때에만 움직인다는 중국의 속성을 간파한 미국식 ‘중국 길들이기’ 였다.

베이더는 북한 문제의 최종 해결은 결국 북한이 붕괴해 한국에 흡수통일 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 신념이 현실에 이르기 전까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약화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 중국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일선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푸념처럼 “중국을 상대하다 보면 벽에다 말을 하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덩치를 불린 중국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힘을 과시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이 우리만의 힘으로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경우 차선책은 중국이 자신의 힘을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없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처럼 강력한 지렛대는 없지만 중국의 국익을 이용하고 한중 공동의 이해를 넓히며 한국식 중국 다루기에 도전해야 한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오늘과내일#하태원#중국#북한#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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