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훈]선거 소음과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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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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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4, 5년 전 아파트 층간 소음에 시달린 적이 있다. 위층 아이는 3, 4세 돼 보였다. 한눈에 봐도 개구쟁이였다. 그 아이는 자정 이후에도 발에 오토바이가 달린 듯 거실을 질주했다.

점잖게 항의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불면의 밤’은 이어졌다. 그 후 기자는 다른 연유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 덕분에 지긋지긋한 층간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동주택 층간 소음 때문에 어제까지 사이좋던 이웃사촌이 적으로 돌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드물지만 칼부림도 벌어진다. 신경전 이상의 갈등까지 치달은 건수는 환경부에 제기된 것만 2005년 114건에서 지난해 314건으로 급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분 동안 연속으로 소음을 측정할 때 주간(거실) 35dB(데시벨), 야간(침실) 30dB 미만이어야 ‘정상범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층간 소음 기준은 주간 55dB, 야간 45dB로 국제기준에 비해 너그러운 편이다. 최근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기준 수치를 더 낮출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소음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소음에 노출되면 짜증과 불안감이 생긴다. 사람에 따라서는 맥박수가 증가하거나 혈압이 상승하며 드물게는 공격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85dB 이상의 소음에 자주 노출되면 청력이 떨어지거나 난청이 생기기 쉽다. 바로 소음성 난청이다.

이처럼 소음의 폐해가 큰데 정부가 무제한의 소음을 허락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선거 소음’이다.

선거 유세에 사용하는 확성기 소리는 층간 소음 기준의 배에 가까운 100dB을 넘는다. 공사장에서 나오는 소음(85∼90dB)보다 크다. 이 때문에 대중가요를 개사한 로고송은 노래가 아니라 악다구니처럼 들린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확성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휴대용 확성기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소음 기준은 없다. 아파트 층간 소음에는 경범죄가 적용되지만 선거 소음은 민원이 폭주해도 처벌할 수 없다. ‘무자비한 소음 남용’을 법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절대 정숙이 필요한 학교와 병원 주변에서도 확성기는 빵빵 터진다. 날 좀 봐달라는 ‘구애’치고 이처럼 일방적이고 무식한 방식도 없으리라. ‘몰염치’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이라며 면죄부(免罪符)를 팔았다. 모든 죄를 사해준다는 면죄부. 혹시 후보들이 자신도 면죄부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묵직한 정치 쟁점도 아니고 사소한 소음 가지고 야박하게 그러느냐고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싹수가 노랗다. ‘사소한 주민 불편’도 해결할 의지가 없는데 정말 중요한 민생 문제에 팔을 걷고 나서겠는가.

확성기 유세는 지지자들에게나 선거운동으로 비친다. 나머지 사람에게는 짜증나는 소음에 불과하다. 오히려 정치 혐오증만 키울 수 있다. 2010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에서 국민의 62.1%가 유세차량에서 나오는 소음공해가 가장 불편했다고 응답했다.

이번 선거에서 유세 차량 대신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민과 접촉한 후보가 적잖았다. 선거유세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다. 19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은 오늘로 끝나지만 다음에는 이런 후보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면죄부를 판매한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의 역풍을 맞았다. 민심의 역풍을 맞지 않으려면 법을 정비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선거 소음을 허락하는 면죄부를 준 적이 없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뉴스룸#총선#선거#선거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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