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의 부정직과 불성실이 근본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치안(治安)은 국가가 국민이 안전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보호하는 기초적인 공공 서비스다. 치안의 첨병인 경찰은 막대한 예산과 조직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여성 혼자 밤길을 다녀도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나라는 한국 일본 싱가포르를 비롯해 세계에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1일 밤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피살사건은 치안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피해자는 112신고센터에 자신의 위치와 긴박한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알렸지만 경찰의 도움을 못 받고 끔찍하게 살해됐다. 112센터 근무자는 극도의 공포에 빠져 있는 피해자에게 조서를 작성하듯 엇비슷한 질문을 반복했다. 피해자는 “집에서 성폭행 당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경찰은 도로 운동장 등 엉뚱한 곳만 찾아다녔다. 주민이 깰까봐 경광등도 울리지 않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신고 접수도, 현장 조사도 형식적이었다.

경찰의 ‘거짓말 행진’이 이어졌다. 신고 전화가 15초 만에 끊겨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자 1분 20초 동안 통화했다고 털어놨다.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전화는 7분 36초 동안 연결돼 범행 현장의 비명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불 켜진 곳은 모두 탐문했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본보 확인 결과 현장 부근의 주택과 상가 137곳 중 2일 오전 7시까지 경찰이 들른 곳은 4곳뿐이었다. 수원중부경찰서 강력팀 전원이 투입된 것도 경찰 발표보다 4시간 늦은 시점이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 불성실 근무 행태를 여지없이 노출했다. 경찰은 조현오 청장의 진두지휘로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에 열심이다. 솔직히 국민은 수사지휘권을 검찰이 갖든 경찰이 갖든 크게 관심이 없다. 제발 민생치안이나 확실하게 챙겨주기 바랄 뿐이다. 경찰은 ‘잿밥’에 신경 쓰느라 본업인 민생 치안은 안중에 없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최근엔 전·현직 경찰관 40여 명이 ‘룸살롱 황제’로부터 상납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경찰을 위해 계속 세금을 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 정도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일각에서 조선족을 매도하는 움직임이 있어 걱정스럽다. 개인이 저지른 범죄의 책임을 그가 속한 집단에 덮어씌우는 것은 다문화 시대에 공존과 화합을 해치는 일이다. 미국에서 한국계가 총기난사 사건을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 교민사회가 위협받는 일은 없다.
#경찰#거짓말#수원20대여성피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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