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사 검사라고 경찰조사 거부할 특권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0일 03시 00분


나경원 전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관련 경찰 수사가 판사 검사의 비협조로 난항을 겪고 있다. 김 판사는 15일 경찰의 출석요구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어 못 나가겠다”며 불응했다. 김 판사로부터 기소청탁을 받았다고 주장한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는 경찰의 서면질의서에 마감시한인 14일을 닷새나 넘기면서도 이유를 대지 않고 응답을 거부하고 있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 판사 검사라도 경찰 수사에 일반인과 똑같이 응해야 하고, 공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실하게 수사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1990년대 중반까지 법무부령에 따라 검사를 수사할 수 없었다. 이 규정이 폐지된 후에도 판사 검사가 연루된 사건은 경찰이 수사를 자제하고 검찰이 직접 나서 수사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올해 1월 1일자로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은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했다. 경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는 게 원칙이다. 검찰이 모든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또 수사가 끝난 사건은 검찰의 기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고 해서 판사 검사가 경찰에 상전인 양 행세하며 경찰 수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판사 검사가 동시에 연루된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이 가장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주체다. 김 판사와 박 검사의 주장이 달라 서면조사만으로는 진실을 밝히기가 어렵다. 김 판사는 “전화는 걸었지만 청탁은 아니었고 사건 설명이었다”고 주장했다. 박 검사는 “청탁으로 받아들였고 사건 재배당을 받은 후임 검사에게까지 얘기했다”고 엇갈리는 말을 했다. 게다가 공소시효가 다음 달로 만료된다. 경찰의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

경찰은 김 판사와 박 검사에게 20일 출두하라고 통보해 놓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나 전 의원은 타격을 입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 판사가 청탁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법관으로서 징계감이다. 후임 검사에게까지 청탁 사실을 알린 박 검사 역시 청탁을 거부해야 할 검사로서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경찰은 필요하다면 판사와 검사의 대질신문을 통해서라도 기소청탁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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