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野圈 정책합의, 경제 活力 죽이면 서민 더 어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2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내놓은 ‘4·11총선을 위한 범야권(汎野圈) 공동정책합의문’은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 총액출자제한 재도입,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 확산, 대형마트-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 강화, 국립대학 법인화 폐지를 담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정책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내용이 많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제는 전형적인 가격규제다. 당장은 세입자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조만간 임대주택의 공급량을 줄여 세입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 국내외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총액출자제한은 투자 부진의 부작용만 낳을 뿐 실효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2009년 폐기된 제도다.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도 온갖 부작용 때문에 폐지됐으나 합의문에서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이름만 바꿔 달고 재등장했다. 대형마트-SSM 규제를 계속 강화하면 ‘질 좋고 다양한 물건을 싼값에 공급하는’ 유통혁명은 점점 요원해진다. 유통혁신 없이 서민 소비자의 생활은 어떻게 보호할지 걱정이다. 국립대 법인화를 폐지하면 서울대는 세계수준 대학으로 도약하기 힘들다. 이처럼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전체 경제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도,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도, 중산층을 육성할 수도,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수도, 사회를 선진화할 수도 없다. 언뜻 보면 서민을 편드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서민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정말 필요한 것은 ‘경쟁 제한’이 아니라 ‘공정 경쟁’이다. 기득권, 담합, 유착 등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경쟁제한적 요소를 제거해 창의와 활력(活力)을 자극해야 선진화가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엔 친(親)기업, 부자 감세 등 우파정책을 취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친서민 중도정부’를 내세우며 중도 쪽으로 상당히 선회했다. 양극화는 우파정책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의 진행과 금융위기로 초래된 측면이 더 크다. 그런데도 이 정권을 ‘신자유주의’ ‘극우’라고 거칠게 규정하는 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지금은 여야 할 것 없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지금보다 확대돼야 한다. 이를 위한 세제개편도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한쪽으로만 밀어붙이면 안 된다. 한국은 고령화가 너무 빨리 진행돼 지금의 제도로도 복지지출이 재정을 위협할 판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선거에서 오직 득표만을 위한 거짓 주장과 선동이 판을 휩쓸고, 그것이 정책으로 굳어져 나라가 잘못 굴러가면 중우(衆愚)정치가 된다. 정치의 타락 때문에 공동체가 감당 못할 비용을 치를 수 있다. 유권자의 밝은 눈으로 허황된 공약이나 사탕발림 복지를 꿰뚫어봐야 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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