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이형빈 교사의 길

  • Array
  • 입력 2012년 3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에요. 국어지만 문예체에 두루 능한, 감수성도 좋고 생활과 수업지도에서 혁신적이라는 점에서 추호도 의심이 없어요. 이런 분을 맞게 되는 학교 학생 학부모는 정말 복이에요.… 정말 이런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나는 학생은 얼마나 행복할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말이다. 1심 판결로 직무에 복귀하고 처음으로, 지난달 29일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가 언급한 선생님은 이형빈 씨(42)다. 서울 이화여고 교사를 스스로 그만둔. 멀쩡한 학교가 귀족학교로 변할 때, 한 명 정도는 거부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측근 3명을 곽 교육감이 특별채용했다는 보고를 받고 필자는 난처하게 됐다. 회사의 다른 후배가 이 씨의 고교 및 대학동창임을 알고 나서였다. 이 후배는 동아일보 기사로 친구가 꿈과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했다. 특채내용을 보고한 기자, 이 씨의 친구인 기자. 둘 다 아끼는 후배다. 하지만 머리를 오래 싸맬 필요가 없었다. 통상적 절차를 지켰는지 확인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2년간 중등 사립교원을 공립고에 특채한 적이 없다. 마지막 특채였던 2009년에는 과목별 선발 인원과 자격 요건을 공고하고, 교직교양 시험(선다형, 논술형)과 면접을 치렀다.

이번에는 공고를 하지 않고, 면접만으로 끝냈다. 더구나 이 씨는 곽 교육감의 선거캠프와 당선자 태스크포스(TF) 출신의 비서다. 측근 봐주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절차와 상식,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실이 명확하니 기사 판단에 사적인 감정을 넣을 여지도, 오래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곽 교육감은 달랐던 모양이다. 개인적 판단을 더 중시하는 듯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특별채용이라는 게 별 경우가 다 있었다. 유학을 위해 사직한 교사도 2005년 특별채용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기자들이 “(그렇게 특채된 교사들이) 교육감 측근이었나”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모르겠고 중요한 거는, 저는 이형빈 선생님 같은 경우에 특별채용 대상이 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자사고 에) 반대해서, 교육자적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그만둔 경우는 유일하다. 그거야말로 특별채용의 대상이 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동아일보 기사는, 간담회에서의 질문은 통상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곽 교육감은 이 씨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넘어가려 했다. 절차와 상식을 지키지 않아도 자신이 보기에 특별하면 특채가 가능하다는 뜻일까. 꼭 묻고 싶었다.

이 씨는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라는 글을 썼다. 이화여고에 사표를 내기 전, ‘우리교육’이라는 잡지의 2010년 1월호에 실렸다.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학교를 바꾸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든 해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 충분히 놀고 충분히 공부하고 충분히 온갖 일을 벌이다가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들어가면 된다.”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과학기술부의 임용취소 결정으로 이 씨는 교단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그가 가려던 자리는 제2, 제3의 이형빈 교사가 지키지 않을까. 이 씨가 다른 곳에서라도 교육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