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계, 비올 때 우산 빼앗는 관행 끊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8일 03시 00분


올해 중소기업 10곳 중 3곳만이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기전망이 어두워지자 투자계획을 줄이거나, 자금조달이 어려워 투자를 미루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23%가 자금난을 겪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2007년 이후 최저 수준이고 중소기업 대출 중 신용대출은 절반이 안 된다. 중소기업이 금융기관과 거래하려면 보증서 또는 부동산 담보 요구, 신규 대출 기피, 재무제표 위주의 대출, 고금리 등 숱한 애로를 극복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지난해 자본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대기업의 3.5%에 그쳤다. 2000년엔 이 비율이 28%였다. 중소기업이 자본시장 금융시장 양쪽에서 설 땅이 더욱 좁아졌다. 금융위원회는 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과 중소기업을 위한 제3채권시장을 올해 개설할 계획이지만 투자자들의 참여가 많을지 의문이 든다.

유럽발(發) 재정위기 여파로 신규 수주가 급감한 중소 조선업계는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제 광주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유재억 세광조선 대표는 “전남 대불공단의 중소 조선소 30여 곳 중 1곳 외에는 모두 파산하거나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금융권에서 선수금환급보증서(RG) 발급을 거부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조선업계에서는 “비올 때 우산 빼앗는 꼴”이라며 금융기관을 비난한다. 2009년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에 착수한 뒤 정부와 금융권은 눈치만 보고 있다. 업계가 줄도산을 하기 전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중장기 플랜에 맞춰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이 어떻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업 자금사정이 악화한 것도 은행들이 시장의 불안정성을 의식해 국고채나 통화안정증권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를 확대하고 중소기업 대출 비중을 낮춘 영향이 크다. 은행들은 금융위기 조짐이 나타날 때 제 살길을 찾느라 대출을 회수하는 나쁜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끝내지 말고 정부는 금융기관들이 자금공급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최근 창업 여건이 크게 개선됐지만 자금이 제조업이나 정보기술(IT) 기업에 주로 지원되고 매출이나 직원 수 등 규모 위주로 평가돼 기술 중심의 창업기업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를 키우기 위해서도 창업 지원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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