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원 앞 시위세력에 사법부 독립 흔들려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참여연대는 어제 대법원 정문 앞에 몰려가 공개서한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난했다. 이들은 서기호 판사가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주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열에 반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에 대해 대법원장과 집권 세력이 괘씸죄를 적용해 서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사법부 독립이 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세력에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서 판사는 이번에 재임용 심사 대상이 된 판사 113명 가운데 꼴찌나 마찬가지인 하위 2%의 근무 평가를 받았다. 서 판사가 지난 10년 동안 근무한 5개 법원의 법원장 7, 8명이 한 평가를 종합한 것이어서 충분히 객관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88년 판사 재임용 제도가 도입된 이후 매년 5, 6명의 법관이 법관인사위원회의 ‘심사 대상’ 통보를 받고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사 대상 통보를 받고도 사표를 내지 않아 재임용에서 탈락한 법관은 24년 동안 서 판사를 포함해 5명에 불과하다. 거의 유명무실한 이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조계 안에서 나올 정도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 성적에 따라 판사가 되면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평생 가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 미국처럼 한 번 법관에 임용되면 종신 근무하는 나라도 있지만 변호사 활동을 통해 검증된 사람이 법관으로 임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 법관들이 10년 동안 임기를 보장받으면서 최소한의 평가조차 받지 않겠다는 것은 지나친 선민(選民)의식이다. 국민에게 양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자질 미달로 오판이 잦은 판사, 정치적 발언 등으로 재판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초래하는 판사는 걸러내야 한다.

독재정권 시절이라면 이 제도가 정권의 말을 듣지 않는 법관을 탈락시키는 데 악용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 정도가 그런 것을 용인하는 수준은 넘어섰다. 서 판사가 탈락한 것은 SNS의 정치적 발언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서 판사 사태를 계기로 일선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소집되고 있다. 판사회의는 판사의 5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열 수 있으나 서 판사 임용 탈락에 반발하는 회의가 돼서는 안 된다. 다만 대법원이 판사들의 의견을 널리 들어 근무 평가가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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