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MB의 딱 한 가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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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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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대통령을 ‘가카새끼’라고 원색적으로 비꼬아도 괜찮은 시대다.

백주에 대통령 조각상 머리를 종이뭉치로 툭툭 때리다가 급기야 해머로 박살을 내도 괜찮은 대한민국이다. 북한의 조선중앙TV가 그 동영상을 내보내며 ‘민심의 버림을 받은 이명박 역도의 가련한 몰골’이라고 조롱해도 괜찮은, 허탈한 ‘MB독재’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게 MB 탓’인 듯하지만 5년 전에도 그랬다.

당시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고, 가족·측근은 부패의 상징이었으며, 친노(親盧)는 폐족(廢族)이었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이었다.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음으로 부활하기 전까지는.

조각상 박살내도 괜찮은 ‘MB독재’

이처럼 당대의 평가는 어쩌면 간사하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한 것 같지만 내게는 딱 한 가지 잘못만 두드러져 보인다. 문제는 그 한 가지 잘못이 MB와 MB정권의 모든 걸 규정해 버렸다는 점이다. 왜냐고?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이기 때문이다.

임기 초 ‘고소영’부터 시작된 인사 잘못을 일일이 짚을 생각은 없다. 말하는 입이나 듣는 귀나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도 답답해서 여권 인사에게 물어봤다.

―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진언해 봤는가.

“못했다.”

―왜?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를 말 못하듯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인사 문제는 말 못한다.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 진언하면 오너는 당장 ‘그게 네 돈이냐’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현직에 있는 사람이 ‘VIP’(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직언하면 겉으론 표현하지 않더라도 당장 ‘너나 잘하세요’란 반응이 나오기 쉽다. 자칫 잘못했다간 ‘저X이 자리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줄 수도 있다.”

다른 여권 인사에게도 물었다.

―이 대통령이 총애하는 사람만 싸고도니 ‘불통(不通) 인사’란 얘길 듣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기업 CEO(최고경영자) 출신이라 그런 거 같다. 기업의 세계에선 실수한 사람을 한번 봐 주면 감읍(感泣)해서 언젠가는 실점을 만회하고 공을 세운다. 정치의 세계에선 그게 아니다. 실수한 자를 봐주면 더 큰 실수를 한다. 무엇보다 권력 주변에 나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저 정도까지는 봐주는구나’ 하는. 내곡동 사저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대통령실장과 경호처장, (대통령)총무기획관을 신속하게 ‘처리’했어도 일이 그렇게 커졌을까.”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군왕이라고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사사로운 시시비비(是是非非)에 크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잘잘못을 일일이 따지며 인사를 질질 끌기보다는 민심의 소재를 살펴 적기에 단행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의 인사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인사 때문에 ‘불통 정권’ 이미지

그럼에도 MB는 지금까지도 자신을 위한 인사를 해왔다. 편하게 쓸 사람을 고르고, 보호해왔다. 바로 그 인사 때문에 ‘불통 대통령’ ‘불통 정권’ 이미지가 굳어졌으며 레임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벌써 만 3년째 자리를 지키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체제 아래서 ‘정보 기능이 무너져 내렸다’는 얘기가 국정원 안팎에서 나오지만 원 원장의 정권 내 입지는 요지부동이다.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는데도 자리에 연연하는 박희태 국회의장에 대해선 여권 수뇌부가 ‘정치력’을 발휘해야 정상적인 정권이다.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만은 ‘MB스럽지 않은’, 신속하고 시원한 인사를 보고 싶다. 무엇보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은 인사를 못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야 되겠는가.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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