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인진]韓黑갈등 재발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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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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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한인과 흑인 갈등의 악몽이 재연될까 두렵다. 1990∼1991년 뉴욕 브루클린 한인 청과상 보이콧과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가라앉던 한흑 간의 인종갈등이 댈러스에서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흑인 민권단체와 긴밀히 협력을

이번 갈등은 댈러스 남부 흑인 밀집지역의 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소액 직불카드 사용 제한과 높은 기름값을 놓고 흑인 목사와 한인 주인이 벌인 말다툼에서 비롯됐다. 주인은 불만을 제기한 목사에게 “다른 데로 가라”고 대꾸하자 목사는 “네가 너희 나라로 가라”로 받아쳤고, 다시 주인은 “네가 아프리카로 가라”로 응수했다. 이를 두고 목사는 흑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흑인 주민들과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한인 업소 전체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흑인 지역에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업소들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한흑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상인들은 흑인 상권을 떠나거나 흑인 교회나 민권단체들과의 소통을 개선하고 기부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이런 대응책의 결과로 이 도시들에서는 한흑 갈등의 수준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 댈러스 사태는 가난한 흑인들의 소비에 의존하는 한인 업소에서 여전히 인종 편견, 언어 장벽, 문화 차이, 도난과 범죄와 같은 개인적이고 상황적인 요인들이 인종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한인 상인과 흑인 고객 사이의 사소한 마찰은 일상적일 수 있는데 이런 개인 수준의 분쟁이 한인 업소에 대한 보이콧 같은 집단행동으로 발전하는 데는 흑인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운동가들과 그들의 정치조직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한인 상인들의 불친절을 개인 수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한인에 의한 흑인의 경제적 착취라는 개념으로 확대 해석하고 한인 업소 불매운동을 전개해왔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업소들을 상대로 한 불매운동들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외지에서 동원된 전문적 시위대의 주도로 장기간 전개됐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인종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투쟁적인 흑인 민족주의자들이 개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전미흑인향상협회(NAACP)와 같은 전국적인 민권단체의 협조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번 사태의 단기적인 해결, 한인과 흑인 간의 공존을 위한 장기적인 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댈러스 한인 사회는 흑인 사회에서 영향력과 책임감을 가진 흑인 민권단체나 교회와 긴밀히 협력해서 원만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특히 양쪽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가 앞장서서 화해와 치유의 물꼬를 트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한국 정부는 전면에 나서지 말고 한인 사회를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한국 문화에 익숙한 한인 이민 1.5세와 2세가 적극적으로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둘째, 언론이 편파적이고 선동적인 보도로 사태를 악화하지 않도록 언론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한인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신문 기고와 방송 인터뷰를 해 한인 상인들이 희생양으로 몰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한인과 흑인 간의 평화적인 갈등해결과 공존의 비전과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한인 사회는 흑인 사회와 함께 합동 공연, 합동 예배, 장학금 수여 등과 같은 행사들을 통해 서로 간의 편견과 사회적 거리감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위 목표를 위해 평등한 관계에서 지속적인 접촉을 하면 편견이 감소된다는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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