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 절차도 안 지키고 장지연 훈장 박탈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1일 03시 00분


국가보훈처가 구한말 황성신문 주필을 지낸 위암 장지연에 대한 서훈을 취소한 것은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어제 장지연의 후손이 제기한 소송에서 ‘헌법 제80조와 상훈법 제7조에 훈장 수여는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으므로 서훈 취소 역시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다. 대통령이 아닌 보훈처가 서훈 취소를 결정한 것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나 2010년 12월 보훈처가 장지연 등 독립유공자 19명의 서훈 취소를 결정한 데 이어 지난해 4월 국무회의가 서훈 박탈을 최종 의결했다.

정부가 독립유공자에게 법 절차를 무시한 채 훈장을 줬다 빼앗았다는 것은 국가 민족에 대한 이들의 헌신과 기여를 모욕하는 처사다. 장지연은 구한말 항일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가 1905년 을사늑약 직후 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민족의 항일 의지를 북돋웠던 명(名)논설로 아직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가 사장과 주필로 일했던 황성신문은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대표적인 신문으로 일제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는 1921년 세상을 떠났으나 당대 조선인은 그를 독립투사로 추모했고 일제는 그를 경계했다.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은 친필로 그의 비명을 썼으며 1935년 조선사회에서 장지연의 글을 출판하려 하자 조선총독부는 불허했다.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며 발족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6월 장지연에 대해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에 주도적 활동을 했다”고 인정했다. 이 위원회는 “친일 행위를 엄격히 적용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친일 명단에서 제외했다. 2000년대 들어 제기된 그의 말년을 둘러싼 일부 친일 논란도 대부분 일부 학자의 추론(推論)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심사위원회를 앞세워 서훈 취소를 강행했다. 심사위원회에 좌편향적 시각을 지닌 인사들이 참여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보훈처는 무슨 이유인지 서훈 취소를 밀어붙인 심사위원의 명단 공개조차 거부했다. 보훈처는 서훈 취소가 ‘잘못된 결정’이라는 판결이 나온 이상 지금이라도 자세한 경위를 국민 앞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국무회의가 제동을 걸지 못한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역사인식 자체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2월 장지연과 함께 서훈을 취소당한 독립유공자 강영석 김우현의 후손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국가보훈처의 취소 결정을 바로잡고 애국선열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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