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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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5일 2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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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1980년대 가요 중에 ‘그대는 나의 인생’이란 남녀 듀엣곡이 있다. 아직은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는 선택했고, 그래서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공동운명체가 됐다는 내용이다. 1990년대 말 가요 ‘존재의 이유’는 남대문시장 ‘길거리차트’에서 먼저 히트했다. 삶은 팍팍하고 미래는 더 힘들겠지만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달려갈 테니” 하고 남자가 절규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제 사연인 양 숙연해했다.

“가난은 사회 탓”…소녀시대가 운다

“겁이 나서 시작조차 안 해 봤다면 그댄 투덜대지 마라 좀!”

요즘 유행하는 ‘소녀시대’의 ‘더 보이스(The Boys)’엔 선택이나 책임 같은 결기가 없다. 꽉 막힌 현실 때문에 취직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 대고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집념을 보여줘” 하고 사정하는 느낌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58.2%가 “가난은 사회 구조 탓”이라고 했는데, 여자보다 남자가 더 그렇게 믿는다는 걸 알고 부르는 것 같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여자는 그래도 노력 부족, 재능 부족 같은 개인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많았다. 반면 남자는 사회가 불공정하다, 친서민 정책에 불만 있다는 식으로 사회에 더 책임을 돌렸다. 그만큼 압박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겠지만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때도 여자가 울면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며 등장했던 그 듬직한 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그래서 정치권이 ‘오빠’를 자처하고 나섰다. 어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는 ‘노(盧)빠’의 귀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 민주당보다 좌클릭한 강령은 무상의료·보육·교육의 보편적 복지를 국민의 기본 권리로 못 박았다. 과거 홍도를 울렸던 상위 1% 계급을 응징하듯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 극복을 강조했다. 정강 정책대로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만 이뤄진다면 당장이라도 국정 운영을 맡기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탄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교수가 고백했듯이, 이상적 목표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들이 실제론 실행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평등과 연대정신으로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면 소련이 20년 전에 무너졌을 리 없다. 사전트가 경제학 연구에서 얻은 몇 안 되는 귀중한 교훈이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점”이라며 사회안전망도 늘 선한 의도대로 작동하진 않는다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빠 경쟁’을 벌이는 여야세력은 고(高)복지 고소득의 북유럽을 모델로 들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고품질 복지를 제공하는 만큼 세금을 거둬 남유럽 같은 재정위기에 빠지지 않았다. 국민은 소득의 절반쯤을 나라에 바치면서도 큰 불만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 신뢰도가 높다.

리더만 찾지 말고 공공개혁부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제도와 타인을 신뢰하는 ‘사회적 자본’ 수준은 북유럽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집권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부패와 법치, 재산권보호 지수 순위를 기록한 한나라당이 복지를 확대했다간 혈세만 빼먹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진보세력만이 검찰개혁 재벌해체 등을 통해 사회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좌파의 부패도 우파와 별 차이 없음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서울을 무법천지로 만든 ‘2008년 촛불민심’을 계승한 당이 법치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만 강조해서 민주당이 무슨 수로 개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소녀시대와 더보이스가 야성을 발휘해 경제활동의 성과를 내게 할지 궁금하다.

물론 국민을 좌절시키는 사회구조는 바꿔야 한다. 20여 년 전 ‘역사의 종말’을 써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알렸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난해 ‘위기 이후의 발전’으로 제안한 것이 공공부문의 개혁이다.

자본주의의 맹점이 드러난 지금, 약자보호의 사회정책과 전략산업을 위한 산업정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정체성 수호 의지와 공익 마인드가 없는 공직자들이 ‘강한 정부’를 자임하면 위험하다고 후쿠야마는 지적했다. 오빠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약자에게 ‘삥’이나 뜯는 ‘양아치’인 것처럼, 공직을 사익 추구의 자격증으로 아는 공공부문이 커질 경우 국민 삶은 더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자정(自淨) 능력뿐만 아니라 자멸 능력도 있다. 가난을 사회 탓으로 여기는 건 자유지만 그런 태도론 가난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게 신경경제학의 연구 결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판치는 21세기 정치판에서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라는 드라마 속 세종 같은 리더를 고대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그러고 보면 내 가난이 사회 탓이라기 보다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이 내 탓일지 모른다. 오빠는 없다. 마침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야 대표 셋 다 ‘언니’가 됐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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