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글로벌기업답지 않은 삼성-LG 가격담합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2008년 말 20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가 높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10kg 전자동 세탁기 3개 모델이 갑자기 시장에서 사라졌다. 고가인 드럼세탁기 6개 모델의 값은 8만 원가량 올랐다.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가모델을 60만 원 이상의 값에 사야 했다. 이제야 그 내막이 드러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관계자들이 그해 10월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만나 값싼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대체제품은 가격을 올리기로 짬짜미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에 적발된 것이다.

두 업체는 저가모델 단종(斷種), 대체모델 출고가 인상, 할인율 축소, 유통업체에 주는 장려금 및 상품권 축소 같은 방법을 동원했다. 짬짜미 대상도 세탁기, 평판TV, 노트북PC까지 다양했다. 노트북의 경우 최대 20만 원을 담합해 인상했다.

2008년 말이면 금융위기로 서민 살림살이가 어려웠을 때다. 그 상황에서 소비자의 등을 쳤으니 삼성의 ‘사회적 책임’이나 LG의 ‘정도(正道)경영’ 구호가 무색하다. 이러한 행태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키워준 국내 소비자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한국 대표기업의 체면과 자존심은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두 회사는 2010년 11월 교실용 시스템에어컨 조달 계약에서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고, 12월에도 교실용 TV 담합으로 제재를 받았다. 이쯤이면 거의 상습적이라고 할 만하다.

국내 독과점 대기업들의 담합은 고질병이다. 정유사의 기름값, 항공사의 유류할증료, 밀가루, 세제, 음료수, 보험료 등 담합 품목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경쟁은 시장경제의 본질적 요소다. 시장경제의 최대 수혜자들이 시장경제를 뒤흔든 꼴이다. 두 회사는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 재발방지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

기업이 불법인 줄 알면서 담합을 저지르는 것은 평균 과징금이 관련 매출액의 2.3%에 그칠 만큼 가볍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담합이 적발된 회사는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을 맞고 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과징금을 높이고, 반복된 담합은 가중처벌하며, 관련자 형사처벌도 따라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있는 피해자 손해배상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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