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완주]소값폭락으로 고통받는 축산농민에게 우선 지원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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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주 전북지사
김완주 전북지사
엄동설한에 소가 굶어 죽어 가고 있다. 전북 순창군 축산농가의 현장은 참담했고, 농민들은 말을 잃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말을 잃었다기보다 말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이 그들의 충혈된 눈과 거친 목소리에 배어 나왔다. 지금 키우고 있는 소 50마리를 모두 묻어버리겠다고 말하는 농민의 이야기에 우리도 할 말을 잃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명확했다. 소 가격이 소에게 먹일 사료값 등 생산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젖소 수송아지 한 마리 값은 단돈 1만 원 수준으로 삼겹살 한 끼 식사비도 안 된다. 송아지를 키워 시장에 내놓는 순간 농민들은 본전도 뽑지 못해 손실이 그대로 되돌아온다.

전북 농촌에서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 소 값 폭락은 그 상처가 매우 크다. 배추밭을 갈아엎고 양파를 묻어버리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이 지금 농촌을 뒤덮고 있다. 사실 이런 상황은 2, 3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고 있었다. 농촌에 돈 되는 품목이 없다 보니 농민들이 한우 사육으로 몰렸지만, 그 와중에 광우병 파동이 지나가고 외국산 쇠고기 소비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전북은 구제역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대규모 매몰 사태를 피한 유일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구제역보다 무서운 소 값 폭락이 농가를 휩쓸고 있다. 전북지역 농업에서 한우는 쌀농사 다음으로 중요한 품목이다. 한우농가가 무너지면 전북의 농촌은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당연히 이런 상황은 전북만의 특수 상황이 아니라 전국 모든 농가의 문제다.

농민들의 요구는 명료했다. 작금의 상황을 긴급한 재난상황으로 인식해 달라는 것이다. 육우에 대해 정부가 농협과 축협을 통한 수매를 지원해 마리당 10만 원씩이라도 긴급 지원을 해 줄 것과, 암소를 도태시켜 공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태장려금을 지원해 줄 것, 축산농가가 사료값으로 빌려 쓴 자금의 상환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여기에는 장기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의 파고가 밀고 올 미래의 불안감에 대응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소 값 폭락 사태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통해 수급을 조절하면서 장기적으로 축산시장의 정상화를 추구하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관점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정책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가 바라보고 있는 대로 현재 소 값 폭락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유통의 문제다. 정부나 농민 모두에게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문제다. 한국 농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농축산물의 수급을 좀 더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을 개혁하려 하고 있고 농민들도 그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현장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생산과 유통, 소비의 혁신이 완성되려면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하고 제도와 관행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 3년간 한우 사육농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소 값 폭락으로 나타났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현장의 농민들이 겪는 고통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사육 두수 조정을 위해 암소 도태장려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장려금이 확대 지원되어야 하고, 육우에 대해서는 긴급 수매를 해줘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유통 혁신이 좀 더 빠르게 진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단 지금 집 안방에서 일어난 불을 끄고 그 다음에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는 이성적이고 냉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고통에 대해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해야 한다. 지금 농민들은 구제역의 위협에 맞서 싸우고 있고,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장차 FTA에도 대응해야 한다. 임진년 새해 벽두부터 농민들이 겪는 고초를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다.

김완주 전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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