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특별방송’ 예고 후 2시간 정부는 잠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그제 “북한 방송원이 비통한 어조로 특별방송을 알리고 있고 지금 방영 중인 모든 프로그램이 김정일의 생애와 활동 소개로 일관돼 있다”며 정오 특별방송 직전에 김정일 사망 가능성을 추정했다. 북의 예고방송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5차례나 반복됐다. 그런데도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어제 국회에서 북한의 특별방송 전까지 김정일 사망 사실을 몰랐다고 답변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정오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막대한 국가예산을 쓰는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력이 결정적 시기에 일개 탈북자 단체에도 못 미친다면 국민 세금이 아깝다.

정부의 대북 정보력에 구멍이 뚫린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 3월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가 “김정일의 중국 방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김정일의 방중은 그해 5월 3일 이뤄졌다. 올해 5월 20일 김정일이 방중했을 때도 3남 김정은이 동행했다고 예측했지만 헛다리를 짚었다.

정부 일각에선 지난 주말부터 북한 관련 정보 수집이 중단되고 북한 일부에서 곡(哭)소리가 났다는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김정일 사망설이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체계적인 정보수집과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사망 4시간 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했다. 어제 오전엔 참모들과 71세 생일 케이크를 잘랐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내부는 시시각각 긴박하게 움직였는데도 정작 우리만 한가로웠던 것이다.

남북 교류에 치중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정보 수집 라인이 대폭 축소돼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휴민트 망(網)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5∼10년이 걸린다. 북한 같은 폐쇄국가를 상대하려면 인적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정일 사망 이후의 상황이 더 문제다. 김정은의 북한 권력 장악이 순조로울지, 군부 쿠데타나 김정일 아들과 측근들이 맞붙는 권력투쟁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북한 정보 하나하나가 우리의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 중국 등 주변 나라와 외교적 조율을 해야 한다. 250km에 걸친 군사분계선을 놓고 북한과 대치 중임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정보 획득에 실패해 진주만 사건과 9·11사태를 겪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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