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조광래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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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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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고 한다. 성적을 못 내면 취임 초기라도 좌불안석이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최근 프로야구에선 사령탑들의 희비가 성적과 반비례했다. 지난해 말 롯데 제리 로이스터, 삼성 선동열 감독이, 올해는 시즌 중에 두산 김경문, SK 김성근 감독이 옷을 벗었다. SK, 삼성, 두산, 롯데는 지난해 가을잔치에 참가한 1∼4위 팀이다. 올 시즌이 끝난 뒤에는 준플레이오프를 치른 KIA 조범현 감독이 계약 기간을 1년 남겨놓고 경질됐다.

반면 공동 6위에 그친 한화 한대화, 꼴찌 넥센의 김시진 감독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한대화 감독은 나쁜 전력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해서 ‘야왕(野王·야구의 왕)’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5월에 사장과 단장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새 집행부가 들어오면 감독도 바뀌는 게 십중팔구인데 말이다.

이제 사령탑에 대한 평가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구단이 추구하는 경영 철학이나 팀의 미래 등이 주요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됐다. 김성근 감독과 일본 주니치의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도 성적에만 목을 매는 야구를 한다고 잘렸다. 특이하게 김경문 감독처럼 스스로 그만두는 사례도 나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1호 사령탑이라 할 만한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어떨까. 파리 목숨보다 훨씬 살벌한 표현인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게 바로 이 자리다. 독주를 마신 감독은 취임과 동시에 시한부 생명이다. 축구 대표팀 감독은 한 경기도 져서는 안 된다. 경기가 재미없어서도 안 된다. 대한축구협회는 물론이고 팬들의 다양하고 상반된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마치 초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동안 해독에 성공한 감독은 거스 히딩크, 허정무, 박종환 정도였다. 차범근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를 치르는 중에 해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광래 감독의 전격 경질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자 차기 사령탑으로 전북 최강희, 울산 김호곤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고사했다. 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조 감독을 발탁했다. 조 감독은 속칭 ‘축구 야당’이다. 당시 경남 사령탑이었던 그는 ‘조광래의 아이들’로 불리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키워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축구협회는 이런 조 감독의 지도력을 대표팀에 수혈하는 한편 비주류를 끌어안아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순항하던 조광래호는 8월 한일전과 11월 월드컵 3차 예선 레바논전에서 패퇴했다. 대표팀이 예선 탈락한 것도 아니고,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등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할 변수조차 아니었다. 다만, 조 감독과 협회의 1년 7개월간 쌓인 불화만 뒤늦게 부각됐다. 결국 처음부터 이들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에 조광래호의 잇따른 패배에 등을 돌렸던 팬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축구협회의 섣부른 감독 경질을 비난했다.

조 감독은 3차 예선까지 계약된 예선용 사령탑이긴 하다. 구원투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다면 바꿔주는 게 맞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조 감독의 축구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꺾여 버린 것은 너무 아쉽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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