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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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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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내년 3월 26,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47개국 국가원수와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4개 국제기구 대표의 참가가 확정됐다. 초청을 검토 중인 덴마크 헝가리 루마니아 등 10여 개국이 더 오면 국가수반급 인사 60여 명이 방한하는 건국 이래 최대의 국제회의가 된다.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금융·경제 관련 최상위 포럼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능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통 없어 보인다. 청와대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정부의 준비 태세도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관련 전문가들조차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어려운데 60자 회담이 잘되겠느냐”며 자조(自嘲) 섞인 농담을 한다. 정부 당국자 사이에서도 ‘흥행 실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전 세계의 핵물질과 핵시설이 테러집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안을 강구하는 자리다. 세계 도처에 산재한 고농축우라늄(HEU) 1600t, 플루토늄 500t은 핵폭탄 10만 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지구촌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실질적 위협이다. 하지만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서울의 대형 빌딩에 핵 테러를 가하는 시나리오는 선뜻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게다가 최대 안보위협인 북한 핵문제는 논외라니 좀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다. 북한은 대놓고 HEU 농축을 하고 있는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이 문제를 언급도 못하면 이상한 상황이 될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어젠다다.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간곡히 요청해 한국이 유치했다. ‘핵 없는 세상’을 내세워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핵군축(신전략무기감축협정 체결) △핵비확산(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핵안보 등 핵 3륜(輪)을 가동 중이고 핵안보정상회의도 그 가운데 한 축이다.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가 한국의 국격(國格)을 한 단계 높이면서 원자력 발전 진흥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일각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어젠다에 한국이 나서는 것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내년 회의는 2년 전 회의와 좀 다른 내용을 담는다. 핵 테러만 집중 논의하자는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안전문제와 방사성 물질에 대한 안보 문제를 주요 의제로 관철시켰다. 우리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문제에서 모범국가임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한미 간 원자력협정(1974년 체결)의 개정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원자력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회의의 성공적 개최가 중요하다.

2012년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에서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북한이 이른바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한 해여서 한반도 주변의 안보 환경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잘만 활용하면 한국이 국제안보 규범을 만들어 가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핵 테러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고 내부적인 대비 체계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국가이익을 좀 더 넓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안보 논의의 흐름을 주도하는 ‘성숙한 세계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국가적 의지야말로 핵안보정상회의 성공의 제1 조건이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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