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지하철 안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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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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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는 임신부가 책을 수십 권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임신부에 대한 배려를 호소하는 공익광고가 붙어 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노약자석에서 “자리를 옆으로 비켜 달라”는 노인에게 막말을 퍼부은 30대 임신부의 동영상이 공개돼 물의를 빚고 있다. 임신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 현실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는 견해도 있지만 노인에게 삿대질을 하고 아버지의 직업을 거론하며 위세를 부린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지하철에서 10대 여학생이 70대 할머니에게 반말을 하고 난투극을 벌이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실수로 흙을 튀긴 여학생을 할머니가 나무라자 여학생이 “나한테 뭘 원하는데. 네가”라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나 삼팔(38)년생이다. 왜”라며 여학생의 몸을 밀치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지난해 12월에는 20대 여성이 옆자리 할머니에게 “나 이제 내리니까 그때 앉아” “나 지금 속 시끄러우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마”라며 반말로 면박을 주는 동영상이 나왔다.

▷지하철 풍경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예전에는 지하철 내 성추행이 사회적 이슈였지만 요즘은 세대 갈등을 반영하는 듯 노인과 청년세대 사이의 자리다툼이 부각되고 있다. 휴대전화로 당시 상황을 담아 인터넷에 올리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전보다 자리다툼이 많아진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지하철 노약자석에 무심코 앉아 있다가 노인들에게 불호령을 당했던 경험이 더러 있을 것이다. 지하철이라는 공적(公的) 공간에서도 노인들은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윤리가 지켜지길 기대하는 반면 서구식 개인주의에 익숙한 젊은이들 중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지하철과 버스에 노약자석이 따로 마련돼 있는 한국을 흥미롭게 여긴다. 미국과 유럽의 지하철과 버스 안에선 남자 노인이 젊은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는 있어도 남자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자리 양보를 받은 노인은 자신이 퇴물 취급을 받은 것처럼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존재한다. 지하철 안의 볼썽사나운 자리싸움이 ‘세대간 불통(不通)’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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