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인요한]한국과 세네갈의 차이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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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속 의사 약사 간호사 14명과 함께 아프리카 세네갈로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10일간 수도 다카르에서 2시간 떨어진 외지에 머물면서 첫날 220명의 환자를 진찰했다. 셋째 날부터 환자가 400명을 넘었다. 서울에서 하루에 환자 20∼30명을 보던 데 비하면 중노동이었다.

수도인 다카르만 하더라도 경제의 활력이 보였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현대식 상수도는 아예 볼 수 없었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화장실이나 쓰레기 수거 역시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고 우리가 머문 숙소는 자가 발전으로 전기를 돌렸다.

세네갈과 한국은 1960년대 국가 재건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같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끝낸 뒤고,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시기다. 하지만 2011년의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돕는 나라가 됐고, 세네갈은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차이의 원인에 대해 두 가지를 떠올렸다. 여성과 리더십이다. 세네갈은 인프라 등 물적 자원도 빈약했지만 인적 자원에서도 희망이 적었다. 특히 여성들의 의식 수준이 높지 않았다. 환자 가운데 아이를 5명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온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에게 이 아이들만 잘 키우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녀는 나에게 “신이 주면 더 낳아야죠. 무슨 말인가요”라며 반박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도 큰 흥미가 없었다. 남성 한 명이 여러 여성과 결혼해 사는 일부다처제 속 여성들은 2세 양육에 대한 욕심보다는 남편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에 자원을 더 투자하는 듯 보였다. 또 많은 어머니들이 거의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는데 공통점은 모든 곳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생활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 않겠지만 실제 상태보다 증상을 과장되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세네갈 어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본 한국의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어릴 적 나는 친구 집에서 자주 잤다. 1960년대 한국인 대부분이 그랬듯 가난하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어느 집에 가든지 구석구석 잘 정돈돼 있었고 아이들의 옷도 깨끗한 편이었다.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집 안을 정리하고 일을 도우며 아이들을 챙겼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뭐든 희생했고 아픈 곳이 있더라도 자신의 몸을 먼저 챙기는 어머니는 많지 않았다. 나는 몰라도 내 자식만큼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겠다는 의지가 희생의 원천이었다. 이런 맹목적 믿음은 부작용도 낳았지만 인적 자원 개발의 원천이 됐다.

전라도 출신이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그가 일군 경제개발 성과는 부인하기 힘들다. 박 전 대통령은 희망을 잃은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 조금 더 노력해 보자”고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고, 때로는 한국인들이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게도 했다. 그의 리더십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브랜드로 제3세계 국가에서 유명한 개발 모델이 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부녀회 조직을 통해 어머니의 힘과 리더십의 힘이 만나면서 폭발적 에너지를 냈다.

봉사 기간에 하루 일과가 끝나면 현지 의대생들과 세네갈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가난이 최고의 인권 침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인들은 매사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 좀처럼 만족하지 않고 늘 더 잘할 방법을 궁리하는 도전의 단초다. 한국식 발전 모델을 구체화하고 널리 알리는 일은 세계 시민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일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한국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가 될 것이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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