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외교안보 大전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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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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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이 채 안 된 2008년 3월 중순. 외교안보정책 수립의 촉진자(facilitator)를 자임하는 고위인사가 미국 워싱턴을 찾았다. 전임 정부에서 조성된 한미관계의 파열음이 심각했고 ‘햇볕정책’도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꺾지 못하고 조종(弔鐘)을 울린 시점이었다. 최대 관심이었던 MB 정부의 ‘비핵·개방 3000’에 대해 이 인사는 “비핵화에 진전을 이룬 뒤 북한이 스스로 경제자유를 이루는 단계로 가는 데 우리가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설명했다. 정책이라기보다는 슬로건에 가까운 이 목표를 이 시점에서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다.

2009년 연이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감행에 MB는 ‘그랜드 바겐’을 내놓았다. 방미한 정부 고위당국자는 “핵무기 농축우라늄 등 전임 정부가 빠뜨린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완결적인 합의서를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008년 12월 형식적인 6자회담이 열린 뒤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대화가 진행되지 않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면 공허하게 들렸다.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론도 내지 못한 사이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우리의 외교안보를 관통하는 대전략(大戰略)이 실종된 상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은 사전에 막기 어려웠고 중국의 주요 2개국(G2) 등장이라는 외생변수가 있었다고 해도 정부의 대응은 임기응변적이었다.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지낸 윤병세 서강대 교수는 “독트린 수준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안보정책을 좀 긴 호흡으로 보는 큰 틀의 전략이 없었다”고 말했다. 굳건한 한미공조에 기초해 일관되게 북한을 압박한 것이 그나마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백악관 주도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를 낸다.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이 담긴 이 전략서는 국방부의 4개년 국방태세검토보고서(QDR)와 핵태세검토보고서(NPR), 국무부의 4개년 외교개발검토보고서(QDDR)의 집필 기준이 된다. 흔들림 없이 항해하는 대전함(大戰艦)에 비유되는 미국 외교안보정책이 안정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사활적 국가이익에 대한 분명한 규정이다. 공유된 국가이익을 토대로 각 후보는 일찌감치 외교안보팀을 꾸리고 국가안보정책을 짠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캠프는 선거 6개월 전에 외교안보 자문단 발대식을 갖고 안보 대계(大計)를 조율했다. 누가 요직으로 갈지도 예측 가능하다.

대전략 수립의 첫걸음은 이념과 시대를 초월한 국가이익 확립이다. 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에 비춰볼 때 확고한 대북 억지력 확보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최선의 가치다. 그 바탕 위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국가 건설이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핵심이익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매국행위라고 선동하고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우기는 세력이 힘을 얻으면 국가 대전략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없다.

한반도 주변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신 태평양 시대’를 선언하고 아시아에 올인하는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패권국가를 노리는 중국도 5세대 지도부로 교체된다. 북한은 강성대국 진입을 공언하고 있다. 2013년 새롭게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꿈꾼다면 다음 세대를 위한 국가안보 대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대전략이 무엇이고 누가 일을 맡아 할지도 모른다면 백전백패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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