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원순 시장, 등록금 철폐 투쟁 하란 말 진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제 동국대 특강에서 “여러분이 어렵게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는데 왜 철폐 투쟁은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학 등록금이 없는 독일 스웨덴 핀란드의 사례를 거론하며 “등록금은 예산과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비전의 문제이고 가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등록금을 폐지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예산과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의 조세부담률(2008년 기준)은 2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중 하위 8위로 평균(25.8%)보다 훨씬 낮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조세부담률이 30% 안팎이고 덴마크는 47.3%나 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로는 몇 년 후 도래할 초중학생 전면 무상급식도 큰 부담이다.

미국 대학은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와 싼 주립대의 이원 체계다. 대학에는 막대한 기부금도 들어온다. 유럽은 대체로 대학 등록금이 없지만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 대학들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다 보니 경쟁력이 정체 상태에 있다. 정치사회적 배경이 판이한 유럽 대학들을 우리와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박 시장은 지난달 27일 초등학교 5, 6학년생 무상급식 비용 지원을 위한 예산 집행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첫 업무를 시작한 뒤 서울시립대 등록금 반값 인하, 무상보육 확대 등 복지 확대에 다걸기하듯 3주를 보냈다. 서울시의 한정된 예산은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면밀하게 따져가면서 써야 한다. 인기를 위해 퍼주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부잣집 자녀들에게까지 등록금을 깎아주고 면제해주는 반값 등록금이나 등록금 철폐보다는 가난한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확충이 현실적이고 절실한 정책이다.

박 시장이 특강에서 대학 시절 투옥 경험을 얘기하면서 “감옥 대학에서 읽었던 책만큼 감동적으로 읽은 것은 없다”면서 “여러분은 감옥엔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는 말도 했다. 학생들에게 면학을 권고해도 모자랄 판에 감옥에 꼭 가보라니 무슨 소리인가. 지금도 박 시장이 감옥에 갔던 권위주의 정권이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다.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면 농담이라고 현장에서 분명히 밝혔어야 학생들이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서울시장의 발언은 무거워야 한다.

박 시장이 범야권 통합을 주도하는 정치인들과 접촉하며 정치행보를 계속하는 것도 적절한 처신으로 보기 어렵다. 시민들은 그가 정치활동보다 시정(市政)에 전념해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서울을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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