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혜숙]EBS 수능 연계 취지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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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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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교육연구소장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교육연구소장
사교육을 잡을 묘책이라는 처방전이 그동안 수도 없이 발행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70%를 EBS 교재에서 출제한다는 처방전은 최근 것이다. 당국이 발표한 연계율 계산이 맞느니 틀리니 설왕설래했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70%라고 공표하고 논란도 크지 않으니 정책을 추진한 당국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소외계층 학생에 기회제공 효과

우리나라는 학교에 교육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국가가 EBS라는 공영매체를 통해 일종의 과외를 제공하는 초유의 결단(?)을 2003년 내린 바 있다. 울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사태의 원인은 사회적 병폐 지경에 이르게 된 사교육의 폐해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EBS 강의와 교재가 있는데도 사교육 감소에 별다른 효험이 없자 초강수로 들고 나온 것이 수능의 EBS 연계 확대다. 학생과 학교, 학원 할 것 없이 꼼짝없이 EBS에 집중시키겠다는 것이다. 올 수능 이후 사교육 시장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데 이를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학교 역시 EBS에 의존하도록 유혹과 압력을 받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인지적 영역의 성취가 교육의 전부가 아니고 덕(德)과 체(體)의 성취도 똑같이 중요하지만 다른 성취들은 측정이 곤란하니 편의상 수능 성적에 초점을 맞춰 학업성취 차별화의 요인을 한번 따져 보자. 제1요인은 물론 학생 개인의 노력과 능력이다. 다음으로는 학교가 중요하다. 고교평준화제도하에서 특수목적고교 등은 약간 다르겠지만 일반계 고교는 교사와 학생 집단의 상호작용이나 문화에 따라 학교의 영향력이 유동적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사회이든 공통적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사교육이라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는데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개인, 학교, 사교육이라는 수능 성적의 3대 요인 중 사교육이 주요 함수로 자리 잡은 현실도 기막히지만 사교육이 다른 두 요인에 비해 너무나 큰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진 암 덩어리다. 수능의 EBS 연계라는 것도 이런 사교육의 영향력을 줄여보겠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EBS 수능 강의 자체는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수능 연계 확대를 정책화하는 데서부터는 부작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은 EBS 수능 강의를 공교육의 범주에 넣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하게 말해 사교육의 특이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사교육 시장에 EBS라는 공적 뒷받침을 받는 거대한 주체가 나타나 학교와 학원에 나를 따라 오라고 호령하는 셈이다. 무료로 제공되는 것도 아닌 EBS 교재에 자주 오류 논란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강조하지만 EBS 강의나 교재는 우리 중등교육을 인도할 아무런 정당성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연계비율 확대땐 부작용 고려해야

한마디로 입시정책 처방전으로는 사교육 문제를 풀 수 없다. 만병통치약을 찾는 꿈에서 모두 깨어나야 한다. EBS 수능 강의와 연계 노력을 해볼 수 있지만 취지를 살리는 길은 비율을 단번에 확대해 한 건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부작용을 염두에 두면서 조심스럽게, EBS라는 또 다른 사교육 주체가 아니라 학생과 학교가 핵심 요인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교와 교과서로 영향력이 옮겨지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되므로 독 없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궁리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견줄 수 없는 확실한 투자로 인식되지 않도록 사회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치료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졸자 취업 확대 정책이 입시와 무관해 보이지만 오히려 좋은 처방전일 수 있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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