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자유 민주주의 논쟁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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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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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자유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 참여가 의무이며, 국가 공직도 맡아야 하는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아테네 민주주의 사망 이후 천 년이 넘어 재탄생한 근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해 발전하여 왔다. 절대왕정시대에 자본주의가 출현했고 그 주체세력인 부르주아지도 함께 성장했다. 세력이 커진 부르주아지는 절대국가에 대해 생명, 자유, 재산권의 보호와 국가 간섭이 없는 자율적인 공공영역을 요구했다. 이같이 근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였다. 최초의 권리장전인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에는 신체와 종교의 자유, 저항권도 있었지만, 핵심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로 알려진 국가의 일방적 조세권 제한이었다. 미국의 민주주의 혁명도 ‘보스턴 티파티’라는 조세 저항 운동에서 시작됐다.

이와 같이 근대 민주주의는 소수의 부유한 ‘부르주아지의, 부르주아지에 의한, 부르주아지를 위한’ 자유 민주주의로 출발했으나, 현재 한국을 비롯한 민주국가의 시민들이 향유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의해 확장되고 개혁된 자유 민주주의이다.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혁명, 영국의 차티스트운동 등을 통해 선거권이 유산자(regime censitaire·재산제한 선거권)에서 전체 ‘인민(people)’으로 확대됐고, 그 후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개혁되고 개선됐다. ‘민주주의의 민주화’로 선거 때에만 주권을 행사하는 ‘선거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대표를 감시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 법의 지배, 군에 대한 문민지배 확립, 그리고 실질적인 자유권과 평등권 보장까지를 포함하는 ‘자유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됐고, ‘질 높은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국민주권 원칙 명시

이 점에서 ‘자유 민주주의 논쟁’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에 대해서는 헌법 제1조 1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함으로써 ‘국민주권’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 미합중국의 인민들은’으로 시작하는 미국 헌법이 주권의 소재지를 명시한 것처럼 우리 헌법도 주권의 소재지(국민주권)와 정체(민주공화국)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헌법에 명시된 정체와 주권 소재지를 제대로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것이지,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협애하게 개정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유 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는 헌법적 근거로 내세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의 독재성을 은폐하기 위해 유신헌법에 처음으로 삽입한 것 아닌가.

필자는 자유 민주주의자다. 그래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21조가 ‘의회는 종교, 언론, 출판, 집회, 청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미국의 권리장전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제1조’에 버금가는 한국의 ‘권리장전’이라고 평가하며, 경제적 자유권과 평등권을 동시에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1항과 2항은 우리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개혁되고 진화된 자유 민주주의라는 것을 명시한 위대한 자유 헌정주의 장구(章句)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발전에 논쟁 도움안돼

자유 민주주의 논쟁이 유감인 것은 첫째, 헌법이 대한민국의 정체와 주권의 소재지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우리 정체를 민주공화국이 아닌 자유 민주주의로 개정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정부가 교과서를 고쳐 현 정부의 비자유주의적인 정치를 호도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2009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2008년보다 22위 강등된, 파푸아뉴기니 수준의 69위로 발표했고, 2011년 5월 초 프리덤하우스는 1990년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강등시켜 1990년 언론자유국이 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현 ‘자유주의’ 정부하에서 제3세계 수준의 비자유주의적 국가로 추락했다. 자유 민주주의의 원리와 실제가 일치해야만 ‘질 높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교과서를 고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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