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우혜]모함 대처 능력도 공직 후보의 필수요건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선거철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때와 같다. 온갖 욕망과 거짓과 술수가 한꺼번에 분출돼 혼란의 극을 달린다. 선거 결과에 따라 모두 갖거나 모두 잃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경쟁이 펼쳐진다. 선한 지혜도 동원되지만 사악한 지혜도 손을 뻗어 모함과 음해가 판친다. 선거에 등장하는 모함의 성격을 살펴보면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상대방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일단 조롱의 대상이 되고 보면 당사자의 경륜과 학식과 성품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찮고 만만하게 보여서 절로 ‘표심’이 떠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안과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사람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일이 지닌 위력을 잘 보여준 사례가 현 정권 아래서도 있었다. 광우병 촛불시위 때 광화문대로를 가로막았던 컨테이너 방벽이 ‘명박산성’으로 지칭되면서 세상의 큰 조롱거리가 됐던 일이다. 그처럼 우둔하고도 우스운 시위 대처 방식으로 인하여 대통령과 정부가 한갓 조롱거리가 되면서 형성된 부정적인 국민감정은 이후 시위 전개 과정을 비롯해 매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정주영 ‘오줌설’의 파괴력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조롱거리로 만든 모함이라는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에게 가해졌던 ‘오줌설’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가해진 ‘병풍설’이다. 이 후보를 겨냥한 병풍설은 그의 ‘대쪽’ 이미지를 일거에 파괴하면서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는데, 루머의 확산 과정과 폐해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정 후보의 오줌설은 그 가공스러운 파괴력에 비해 실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서 정 후보의 경우를 짚어보기로 한다.

1992년 대선은 여당 후보인 김영삼 씨와 야당 후보인 김대중, 정주영 씨가 겨룬 삼파전으로 대단한 격전으로 출발했다. 초반에 정 후보는 매우 선전했다. 기존 정계와 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난 민심이 대거 정 후보에게 쏠렸다. 그러나 이내 만 77세였던 정 후보의 고령을 과녁 삼은 악성 루머가 등장했다. “정 후보는 너무 늙어서 자신도 모르게 자꾸 오줌을 지린다. 그래서 기저귀를 차고 선거유세를 다니고 있다”는 것인데,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릴 정도의 건강이라면 격무 중의 격무인 선거유세를 전혀 감당할 수 없으니 그건 분명 억울한 모함이었다. 그런데도 그 루머가 널리 퍼지고 받아들여지면서 판세에 영향을 미쳤고, 조롱의 대상이 된 정 후보는 당선권에서 더욱 멀어졌다.

‘오줌설’은 누구의 머리가 짜낸 것인지 간특한 지혜의 대표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그런 유형의 모함은 이미 2000여 년 전에 활용되었던 역사 깊은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조(趙)나라 명장이었던 염파(廉頗)의 고사에 나온다.

조나라 충신이던 염파 장군은 대단한 명장이라서 외적들은 그가 지키는 조나라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를 알아주던 왕이 죽은 뒤 새로 즉위한 도양왕(悼襄王)이 박대하자 그는 위나라로 망명했다. 어느 날 도양왕은 마음이 바뀌어 염파를 기용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혹시 이제는 염파도 너무 늙어서 쓸모없지 않을까 우려되어 사신을 보내 염파를 보고 오게 했다. 자신의 상태를 살피려고 온 조나라 사신을 맞은 염파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한자리에서 한 말 밥과 열 근 고기를 먹고 갑옷 입고 말에 올라 빠르게 치달리면서 자신이 여전히 용맹한 무장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신으로 갔던 자는 이미 매수돼 있었다. 염파가 귀국해 크게 기용되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을 꺼린 곽개(郭開)라는 자의 뇌물과 사주를 받은 사신은 왕에게 가서 보고했다. “염 장군은 대단히 원기가 왕성하더이다. 다만, 신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세 번 오줌을 지리더이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염파도 이제는 너무 늙었구나!” 하고 탄식하고 그를 불러들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선거판도 바꾼 조롱거리 만들기

그 고사가 2000여 년 뒤에 한국 대선에서 되풀이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최고 재벌가의 선거캠프가 전혀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당시 정 후보 캠프에서 그 고사를 알고 정 후보가 나서서 직접 중국 전국시대 염파 장군의 고사를 언급하며 정면 방어하도록 대처했더라면 선거 판도가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도 ‘1억 원 피부과설’로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나 후보 캠프 역시 ‘후보를 조롱거리 인물로 만들기’라는 사안의 강력한 파괴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선거철에 대두하는 각종 모함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후보라야 살아남는다.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그 또한 공직자로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swhoo@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