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경학]앵벌이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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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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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얼마 전 50대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찾았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어렵게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매달 1만 원씩 후원한다는 신청서였다. 1971년부터 7년 동안 파독 간호사로 일했던 아주머니는 귀국 이듬해 갑자기 이름 모를 병으로 식물인간이 됐다고 한다. 한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 조금씩 방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마침내 걸을 수 있게 됐지만 넘어지면서 앞니 몇 개가 부러졌다. 생활고 때문에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우리 재단에서 장애인전용치과를 운영한다는 말을 듣고 멀리 천안에서 왔다고 한다. 음식을 씹을 수 있게 돼 너무 고맙다며 매달 받는 정부보조금 33만 원 중 1만 원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나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가진 것은 적지만 늘 감사해요. 이건 내 작은 성의입니다”라고 말해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무더운 여름날 몸이 불편한 60대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남편은 젊은 시절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를 굽힐 수 없는 3급 장애인이 됐고 부인은 2년 전 뇌중풍으로 쓰러져 거동과 말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부부가 조심스럽게 꺼낸 누런 봉투에는 노후에 쓰려고 장만한 땅문서가 있었다. “건강할 때는 남의 불행이 안 보였는데 갑자기 1급 장애인이 되고 보니 힘들지만 그래도 내 상황이 나은 것 같아요. 좋은 데 써 주세요.” 부인이 말할 때 입술이 떨렸다. 제대로 발음조차 못했지만 진실을 담은 목소리는 직원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느님은 왜 선한 사람들에게 불행을 내리시는지. 부부는 “장애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그 대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큰 부자들, 앞장서서 약자 안 도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계좌로 큰돈이 입금돼 추적해 보니 미국 대학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떠나는 여학생이 보내온 것이었다. 어렵게 만난 그 학생은 800km가 넘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길을 혼자 걸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우연히 푸르메재단 기사를 보고 그동안 번 돈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이 빛났다.

재단 일을 하면서 크고 작은 감동을 받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큰 부자나 대기업 임원을 만났을 때 실망하곤 한다. 재단이사장이신 김성수 성공회 주교님을 모시고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를 찾았다. 독일 BMW사가 자동차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했듯 재활병원건립기금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 회사는 수천억 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약속했기 때문에 자동차로 인한 재해에 어떤 형태로든 책임감을 느낄 것으로 기대했다. 평생 장애인을 위해 살아오신 노(老)주교님께서 여러 번 머리를 숙이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면담 내내 되돌아온 것은 한번 검토해 보겠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많은 단체에서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회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1인 체제로 알려진 회사 입장에서 보면 부회장이 확답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매년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이럴 수 있습니까”라며 나는 울분을 토했다. 이때 주교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뭐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 앵벌이예요. 바로 남을 위한 앵벌이지요.”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주교님께서는 “절대로 큰 부자가 앞장서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습니다. 조금 넉넉하거나 부족한 사람이 베푸는 법입니다. 한 번 거절당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다섯 번 머리를 수그리고 열 번 간청해야 마음이 열립니다”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말씀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주교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몇번이고 간청해야 부자 마음열려

최근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협찬인생’이란 용어가 화제가 됐다. 정부가 못하는 공익사업을 기업기금을 받아 실천해온 박원순 후보를 한나라당이 비꼰 말이다. 사실 ‘협찬인생’이다. 내 인생도, 박 시장도, 김 주교님의 삶도, 유권자에게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도 어떻게 보면 모두 협찬인생이다. 하지만 고도성장의 그늘 속에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과 서민이 몰락하는 양극화를 겪으며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 살 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남을 위해 헌신한 많은 ‘협찬인생’의 노고 때문은 아닌지.

정부가 국민의 고통을 내 몸처럼 아파하지 못하고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같이 평생 일군 재산을 사회에 쾌척한 기업가조차 없는 우리 현실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 고 제정구 의원과 강지원 변호사, 국민배우 김혜자 씨,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씨 같은 ‘아름다운 협찬인생’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하지 않을까.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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