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명철]‘수능후 고3 교실’ 또 얼마나 술렁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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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사직여고 교장
김명철 사직여고 교장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일선 고교 3학년 교실은 사실상 통제가 어려워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뭐가 그리 급한지 졸업도 하기 전에 서둘러 쌍꺼풀 수술을 하고 머리를 볶고 염색을 하는 학생들이 전염병처럼 늘어난다.

입시 때문에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하나같이 들떠 독서 따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오전 수업이라도 해 보려고 담임과 대책회의를 몇 번이고 해 보지만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자습이라도 해서 내실을 기하고자 여느 때보다 빈번하게 교실을 순회하지만 난장판처럼 변해버린 교실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때쯤이면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책과 평소 사용하던 생활용품을 죄다 버린다. 대학 가서도 볼 수 있는 콘사이스도 국어사전도 던져 버리고, 집에서 입을 수 있는 성한 체육복까지 아무런 가책 없이 마구 버린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촌놈인 나는 20리를 매일 걸어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버스 한 정류장도 걷지 않는 우리 학생들에 비하면 나는 하루 네 시간을 운명처럼 걷고 또 걸었다. 비 오는 날은 정말 학교 가기 싫었다. 몇 번을 고친 낡은 우산은 세찬 바람이 있는 날이면 동구 밖을 벗어나기 전에 무용지물이 된다. 오뉴월인데도 비 맞고 학교에 도착하면 온몸은 한기가 들고 오들오들 떨린다. 그런데 신기했다. 시내버스 타고 온 내 앞뒤 친구들의 옷은 물기 하나 없이 말짱했다.

점심시간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연 쌀밥에 계란말이를 해온 친구들의 도시락 앞에 쑥 반 보리 반의 검디검은 내 밥을 차마 내어 놓을 수가 없었다. 촌놈인 내가 무척 싫었고 솔직히 부끄러웠다.

그날도 청대 같은 비를 맞고 학교에 힘들게 간 날로 기억한다. 조례 들어오시는 담임선생님의 안색이 예사롭지 않다. “저번 주까지 공납금 틀림없이 납부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까지 안 낸 놈 일어나! 당장 가져와!”

담임선생님은 ‘공납금 납부 상황’이란 막대그래프까지 보이며 흥분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는 무섭고 부끄러워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도 아침에 없던 돈이 있을 리 만무하고 새벽같이 20리 길을 비 맞으며 왔는데 어찌 돌아가란 말인가.’ 아무런 저항할 힘도 없던 나는 땅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과 돌을 번갈아 차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웃집 누에고치 날품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 안 가! 학교 가기 싫어!” 몇 년 전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는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교장이 돼 네 번째 수능을 맞이한다. 수능이 끝나면 3학년 교실은 예외 없이 또 술렁일 것이다. 내년 2월 졸업 때까지 들뜬 학생들을 억지로 붙잡아야 되는 담임들은 또 비지땀을 흘릴 것이다.

수능을 잘 본 학생도, 잘못 본 학생도 사물함의 수많은 책을 죄다 버릴 것이다. 사용하던 물컵, 매일 앉던 방석, 온갖 학습 자료나 학용품들을 다시는 안 볼 듯 버릴 것이다. 아까운 줄 모르고 미련 없이 버리는 학생들을 보고 또 나는 격세지감을 느끼며 어렵고 힘들었던 그 옛날을 떠올릴 것이다.

김명철 사직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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