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북자 현장 사살, 체제 한계 드러낸 북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7일 03시 00분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도착한 탈북자를 북한군이 국경 너머로 총을 쏘아 사살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북-중 국경 경비대에 탈북 주민을 즉각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다. 탈북했다가 다시 잡혀온 주민을 ‘시범 처형’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말로(末路)처럼 김정일 체제가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리비아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귀국 금지령을 내렸다. ‘재스민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친 이집트 예멘 등의 주재원에게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김정일 독재 체제에 민주주의 열풍이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는 필사적 시도다.

하지만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의 실상에 눈뜨고 있는 조짐은 곳곳에서 파악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북한 주민 21명이 목선을 타고 서해상으로 귀순했다. 북한 주민의 서해 귀순은 올해 들어 네 번째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9명의 북한 주민이 동해를 거쳐 일본에 도착한 후 한국행을 택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손자라고 스스로 밝힌 것 등으로 미루어 북한 상류층 주민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단파 라디오로 한국의 사정을 듣고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있는 10만 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언제 중국 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갈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 정부는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탈북자 구출 문제를 우회적인 ‘물밑 외교’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북한 체제의 급격한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이 가입한 유엔 난민협약은 정치적 견해차 때문에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난민을 해당 국가로 강제 추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탈북자 북송은 중국이 가입한 고문방지협약과 인종차별금지조약에도 위배되는 처사다. 과거에는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이 처벌을 받고 석방돼 다시 탈북 하는 일도 많았지만 앞으로는 북한에 도착하자마자 총살이나 중형을 당할 판이다. 중국이 탈북자 인권을 외면하는 것은 G2 국가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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