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MB ‘통 큰 정치’ 할 시간 아직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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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객원논설위원
안세영 객원논설위원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여야가 격돌하는 국회를 보고 평범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느끼는 심정은 어떨까. 하나, “한미 FTA에 큰 관심이 없다. 그 사람들이 왜 그 난리를 치는지 잘 모르겠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한다고 우리 경제가 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박을 터뜨리지도 않는다는 무심한 반응이다. 미국과 FTA를 하면 이 나라가 거덜 난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을 많은 국민이 우리가 아닌 ‘그들’이라고 부른다. 한-칠레 FTA 때 반대하는 농민을 결코 ‘그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국민과 관계없이 정치인들끼리 기(氣) 싸움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둘, “그것 한 방에 우리 경제가 날아갈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 방’이란 가장 큰 반대논리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복잡한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조항 하나가 우리 경제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져 FTA를 반대할 명분을 가져다주겠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칠레와 FTA를 하면 우리 포도농사 쑥대밭이 된다”고,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얼마나 아우성을 쳤던가. 이 같은 주장의 허상을 알아차린 국민이다. 이제 더는 국민을 어수룩하게 봐선 안 된다.

민심 난기류에 정당들 벼랑 끝에

마지막이 재미있다. “대통령께서는 뭐하고 계시느냐”는 것이다. 전용기 타고 미국 가서 그 화려한 외교활동을 하시곤, 성난 야당의원들에게 둘러싸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싸움 안 하겠다”고 절규하는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돕기 위해 왜 청와대가 활발히 움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민심의 미묘한 난기류를 잘 읽지 않으면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모두가 내년 총선에서 무너질지도 모른다.

한미 FTA 이슈는 한때 흥행에 성공했던 한-칠레 FTA나 광우병 파동과는 달라 잘못하면 제도권 정당 자체에 대한 유권자의 환멸로 이어진다.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눈을 밖으로 돌려 미국에서 불붙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주목해야 한다. 평범한 미국인의 분노는 탐욕스러운 금융의 거리 월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회정치에 대한 실망도 큰 원인이다. 8월 국가부채 해결 방안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타협하지 않고 ‘벼랑 끝 버티기’를 하다가 나라를 국가부도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간 데 대한 실망도 크다. 즉 국민이 뽑은 정당 정치인이 구실을 못하니 평범한 시민들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미 이런 직접민주주의 물결이 우리에게도 들이닥쳐 서울시장 자리에 한나라당 출신도, 민주당 출신도 아닌 비정당인이 앉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 현상이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에 통 큰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갈등사회에 들어섰다.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좋으니 따르라는 논리는 이젠 잘 안 통한다.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경청해줘야 한다. 나라를 위해 한번 ‘을’이 돼 손학규, 김진표 의원에게 “청와대 와서 밥 한번 먹으며 이야기하자”라고 손을 내밀면 어떨까. 설사 상대가 대화를 거부한다 해도 대통령으로선 정치적으로 밑질 게 없다.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나서 성심성의껏 야당과 대화하려고 했는데’라는 인상을 국민이 받으면 막판에 국회에서 강행처리를 하더라도 상당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국민 속으로 뛰어들라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이 부지런히 호남 경상 충청 등 민감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과 막걸리 한잔하고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해 준다면 FTA 반대하는 그 지역 의원들은 등 뒤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적장(敵將)이 막무가내일 때 적장의 말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백악관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극렬히 반대하는 상원의원과 물밑 거래를 하기 위해 지역 숙원사업인 환경센터 등을 지어주곤 했다. 미국과의 FTA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큰 유럽연합(EU)과의 FTA에는 겨우 20여 명이 반대시위를 했단다. 어차피 한미 FTA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빛을 볼 팔자인 것 같다.

앞으로 여야의 선택은 두 가지다. 끝까지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국민을 실망시켜 여야 모두가 내년 총선에서 상처를 입느냐.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서로 명분을 세우고 현명한 상생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느냐이다.

안세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syah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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